■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앞집 담장의 줄장미는
참을 수 없이 웃으며
진한 빛깔을 낸다...

‘기차도 전기도 없었다. 라디오도 영화도 몰랐다. 그래도 소년은 마냥 즐겁기만 했다... 아카시아꽃이 지고 밤꽃이 피면 보리가 누렇게 익고 무논에는 모내기가 한창이었다. 보리를 거둬들이고 모내기가 끝나면 산도 들도 마을도 온통 푸르름에 싸여버렸다. 이 푸르름 속에서 뻐꾸기는 온종일 지겹도록 울어대고 마을 앞 느티나무 그늘에서는 노인들이 장기판도 벌였다.’  

중학교 국어 교과서에 실린 오영수의 <요람기> 앞부분 내용이다. 대학을 졸업하지마자 임용고시를 보고 발령이 났던 부산에서 처음으로 교편생활을 할 무렵엔 아이들에게 <요람기>를 가르치면서도 사실 나는 이 산골마을의 초여름 풍경을 이해하지 못했다. 도시에서 나고 자란 덕에 신문물을 일찍 접했고, 우리 때는 더 큰 도시로 더 넓은 세계로 나가는 것이 목표였고 성공의 길로 여겼기에 농촌에서의 삶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못했기 때문이다. 시골로 내려와 살고 보니 예순을 넘어 칠순에 가까워지면서 그때 무심하게 읽었던 글의 내용이 해마다 저절로 되새김 된다.

물푸레나무 낮은 가지에 둥지를 튼 뱁새(붉은머리오목눈)가 바쁘게 들락거린다. 그 둥지에 난데없는 뻐꾸기 새끼 한 마리가 털도 없는 빨간 날개쭉지로 주인 없는 틈을 타 뱁새 알들을 밖으로 밀어 떨어뜨리고 있지는 않을지... 벌레를 물고 온 뱁새의 머리가 통째로 들어갈 만큼 찢어지게 벌린 그 입속으로 먹이를 넣어주는 천진한 어미새보다 뼛속에 새겨지고 세포마다 박힌 뻐꾸기의 생존법칙이 더 슬프다. 뻐꾸기 새끼를 며칠을 먹이고 키운 뱁새는 둥지를 나간 후에 찾아와도 저보다 커버린 뻐꾸기 새끼에게 먹이를 먹여준다. 이 뜨거운 모성애를 누가 가르쳤을까.  그 많은 막장 드라마보다 더 무섭고 더 슬픈 이야기가 아닐는지.

새벽에 눈 뜨는 대로 밭에 나왔다가 햇빛이 들어오기 시작하면 난 흙을 털고 일어난다. 어둑어둑하게 느껴질 정도로 시원한 그늘 길, 잠 설친 수국꽃잎의 이슬방울이 지나가는 햇살에 푸른 사금파리처럼 반짝인다. 유월의 나무는 어느 것 하나 주눅든 게 없다. 작으나 크나 잘 섞인 신록이다. 피천득이 유월을 ‘원숙한 여인’에 빗댄 것처럼 유월은 가임기 여인의 몸처럼 윤기가 자르르하다.

대학 1학년, 남편을 처음 만났을 때 그는 자기가 사는 마을 앞 평야가 우리나라에서 제일 큰 줄 알았는데 초등학교 교과서에 안 나와서 너무 실망했다고 했다. 중학교에 진학하려 영동군 양산면에서 경북 김천으로 시험 치러 갈 때, 생전 처음 기차를, 버스를 타봤다고 하면서 얼굴을 붉혔었다. 당시 모두가 선망하는 서울의 대학에 입학해 잘난 척하는 게 보통이었는데, 남편은 좀 달랐다. 그 후 남편은 나의 걸어다니는 자연백과사전이 됐고 그 솔직함과 순수함이 맘에 들었던 것 같다. 7년이나 연애를 하고 결혼을 할 만큼 말이다.    

들판에는 이미 감자꽃이 하얗게 피어 바람에 흔들리고, 앞집 담장의 줄장미는 참을 수 없이 웃으며 진한 빛깔을 낸다. 나비가 발가락으로 꽃의 겨드랑이라도 건드렸나 화들짝 놀라 웃음 터진 꽃이 붉디붉다. 한 송이를 몰래 꺾어 허리 잘린 투명한 페트병에 꽂으니 그 언저리가 환하다. 이제 들어가 씻고 먹고 나면 짧은 밤 뒤척인 졸음에 못 이겨 살짝 낮잠을 자도 좋으리. 멀리 유월의 산자락이 액자 속 풍경으로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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