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83)

울상이던 패션시장이
새로운 각도에서
변화의 기지개를 켠다...

 

1929년 미국발 세계대공황은 당시 사람들의 삶을 거세게 흔들어 놓았다. 경제적으로 어려워지고 일자리가 사라지면서, 가장 먼저 여성들의 사회참여기회가 박탈됐다. 언제나 하는 이야기지만, 사회를 반영하는 거울인 패션에 그 영향이 나타나지 않을 수 없었다. 집안으로 움직임이 제한되자, 무릎 위까지 짧아진 치마와 짧은 단발머리의 발랄하고 생동감 있던 1920년대의 패션이 바뀌었다. 치마 길이가 발목까지 길어지고, 머리엔 개성 있는 모자를 써서 가늘고 길어 보이게 하는가 하면, 쇼킹 핑크(짙은 분홍) 같은 강렬한 색상이 등장했다. 우아함과 자극적인 색깔로 여성들의 존재감을 드러내고자 했다. 어둡고 무료한 정신세계를 그렇게 벗어나려함이었다.

코로나19의 태풍은 1929년의 세계대공황에 비유되곤 한다. 그 때보다 더 심각한 여파를 주장하는 시각도 있다. 그만큼 우리의 생활에 끼치는 영향이 크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외출이 억제되고, 재택근무가 늘며 사람들을 만나는 기회가 줄었다. 따라서 누구를 만나기 위해 꼭 필요했던 외출복의 중요성이 감소됐다. 패션시장이 폭탄을 맞은 이유다. 그렇다고 해서 옷을 벗고 사는 것은 아니니 절망할 필요는 없다. 여전히 옷은 입어야한다. 달라진 생활에 맞는 패션이 등장하기 마련일 뿐인 것이다. 울상이던 패션시장이 새로운 각도에서 변화의 기지개를 켜고 있다. 

요즘 패션업계에는 새로운 트렌드로 ‘홈’(H.O.M.E)이 주목을 끌고 있다. 홈은 ‘Highlight’(강조), ‘One-mile wear’(원마일 웨어), ‘Mask Fashion’(마스크 패션), 그리고 ‘Early Summer’(이른 여름)에서 알파벳 앞 글자들을 따 조합한 용어다. 불안하고 지루한 시대 상황에서는 사람들이 화려한 패션으로 그 상황을 벗어나고자 한다. 1929년 세계 대 경제공항 때 그랬듯이 요즘 원색이나 화려한 패턴이 강조된(Highlight) 패션 용품이 인기라고 했다. 내 곁 어딘가에 숨어 있을 것 같은, 코로나 바이러스의 감염 결과에 매시간 신경을 곤두세워야하는, 두렵고 우울한 일상에서, 화려한 패션으로 생활에 활력을 찾고 싶은 소비자의 심리가 예나 지금이나 같다는 이야기다.

집에 머무는 시간이 길어지고, ‘홈트족’(홈 트레이닝을 즐기는 사람)도 늘면서 일상복인지 운동복인지 그 경계가 모호한 의류들도 뜨고 있다. 즉 ‘원마일 웨어’(One-mile wear)다. 집 주변 1마일(1.6㎞) 안에서는 어디에서나 편안하게 입을 수 있는 일상복이다. 실내에서는 물론 가벼운 외출에도 무리가 없는 옷이 잘 팔리고 있다고 했다.

필수품이 된 마스크(Mask)가 패션에 반영되는 것도 당연한 이치다. 삼성전자나 현대자동차처럼 패션과 전혀 관련이 없는 기업들도 마스크를 만들어야하는 상황이고, 아르마니를 비롯해 루이비통, 디올, 샤넬, 그리고 에르메스 같은 세계 명품 브랜드들까지 마스크를 생산하게 됐으니 마스크 패션의 등장을 더 설명할 이유가 없다.

E는 지구온난화가 여름을 빨리 몰고 왔기 때문에 일찍 여름옷을 선택하고 있다는 이야기다. 결국 집(HOME)이 패션시장의 화두가 되는 것은 너무도 당연하다. 코로나19시대에도 패션이 역사의, 시대의 거울이라는 단순하고도 확실한 진리의 답 앞에 서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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