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노래의 고향을 찾아서

<4> 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 <봄날은 간다> 작곡가 박시춘 노래비에 <봄날은 간다>악보 동판이 부착돼 있다. (강원도 춘천시 남이섬)

노랫말은 한 편의 ‘애송시’ 수준
11년 전의 일이다. 2009년 문학 계간잡지 《시인세계》가 우리나라 현역시인 100명에게 물었다. “가장 좋아하는 대중가요 노랫말은 무엇 입니까?”… 이 물음에서 압도적으로 1위를 차지한 노래가 백설희가 부른 <봄날은 간다>(1954, 손로원 작사/박시춘 작곡) 였다. 그리고 그 다음 2위는 <킬리만자로의 표범> (양인자 작사/김희갑 작곡/조용필 노래), 3위는 <북한강에서>(정태춘 작사·작곡·노래), 4위는 <사랑, 그 쓸쓸함에 대하여>(양희은 작사·노래/이병우 작곡), 5위는 <한계령>(하덕규 작사·작곡/양희은 노래) 이었다.

▲ 가수 백설희 20 골든 앨범의 자켓. 전성기 때의 모습이다.

특히 <봄날은 간다>는, 백설희 라는 미성의 가수가 낭랑하지만 심드렁하니 불러주는 곡의 분위기도 분위기지만, 그림을 보는 듯한 회화적 이미지(시각·청각 이미지)와 리듬감을 느끼게 하는 노랫말은 한 편의 ‘애송시 수준’이라는 게 대다수의 의견이었다. 이 노래가 처음 세상에 나온 게 1954년이었으니 반세기가 껑충 지난 노래인데, 이 노래로 1950년대 후반 우리 대중음악계의 새로운 스타가 된 원곡가수 백설희 외에도 이미자·나훈아·조용필·최백호·장사익·한영애·심수봉·주현미 등등 내로라하는 국내 가수들 스물 몇명이 가림없이 다투듯 제각각의 목소리와 음악적 스타일로 리메이크해 불렀으니, 그야말로 ‘불후의 명곡’임이 분명하다.

뿐이랴. 노래의 주제를 빌어 쓴 같은 이름의 영화도 만들어졌고, 연극으로도 무대에 올려져 세월의 벽을 뛰어넘는 대중적 인기를 여실히 보여줬다.
그러다 보니 흔하디 흔하게 자고새면 접하는 요즘 일상의 여느 노래들에서는 좀체로 가져보지 못한 노랫말 지은이(작사가)에 대한 궁금증이 산처럼 불쑥 인다.
손로원(孫露源, 1911~1973). 화사하고도 따사로운 봄날을 그리는 일반적인 봄노래들의 역설로 그냥 “그때가 봄날 이었지!” 하지 못하고, ‘옷고름 씹어가며’, ‘앙가슴 두드리며’ 피울음 우는 한(恨)의 정서, 시간·세월의 덧없음에 대한 한탄은 어디서 온 것일까.

 

                        <봄날은 간다>
1. 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 / 오늘도 옷고름 씹어가며 / 산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 꽃이 피면 같이 웃고 / 꽃이 지면 같이 울던/ 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2. 새파란 풀잎이 물에 떠서 흘러가더라 / 오늘도 꽃편지 내던지며 / 청노새 짤랑대는 역마차 길에 / 별이 뜨면 서로 웃고/ 별이 지면 서로 울던 / 실없는 그 기약에 봄날은 간다.

3.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 / 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 뜬 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 새가 날면 따라 웃고 / 새가 울면 따라 울던 / 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1954,  손로원 작사 / 박시춘 작곡)

 

노래로 피어난 어머니의 ‘연분홍 치마’
손로원은 흡사 기인같은 사람이었다고 전해지고 있다. 가까웠던 지인들은 그를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다고 했다.
일제치하에서는 단 한줄의 가사도 쓰지 않았던 소신파로, 봄·여름·가을·겨울 사시사철 검정 고무신과 검정 점퍼를 입고 다니던 괴퍅한(?) ‘막걸리 대장’(막걸리를 좋아 했대서 붙여진 별명) 이었다.

▲ 작사가 손로원.그는 객처로 떠도는 아들을 그리다 세상을 떠난 홀어머니가 애틋했던 열아홉 살 시집올 때 입었던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붙안고 어머니의 무상한 세월을 처연한 노랫말로 그렸다.

그러나 도무지 그의 이력에 대해서는 제대로 알려진 것이 없는 미스터리 투성이다. 같은 대중음악계에 종사하던 사람들 말로는, 서울에서 부잣집 아들로 태어나 강원도 철원에서 자랐고, 연희전문(현 연세대) 문과를 졸업했다는 것이고, 누구는 그가 6년제 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서양화가(1932년)와 시인으로 데뷔(1934년)한 이력을 가지고 1943년 무렵부터 본격적으로 대중가요 노랫말 작사가로 활동했다고 했다.

그런가 하면, 그냥 독학으로 문학을 공부하고 영화평론가로도 활동했다(1958년 기록)고도 했으며, 무대미술에 재능이 있어 부산 피난시절에는 용두산 공원에서 홀로 단칸 셋방살이를 하며 호구지책으로 초상화를 그리고 대중가요 가사를 지었다고 알려졌지만, 증언들만 존재할 뿐 확실한 기록은 없다.
그렇긴 해도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란 말처럼, 태평양전쟁 막바지의 어수선한 시국을 피해 혼자 조선 팔도를 떠돌며 그림을 그리고 시를 썼다. 그런 그에게는 방랑벽이 있는 자식을 늘 그리워하며 눈물 짓던 홀어머니가 있었다. 젊은 나이에 남편과 사별하고 혼자 적지않은 농사를 짓던 어머니가 몇 번이고 입버릇처럼 늘어놓던 말이 하나 있었다.

“우리 로원이가 장가 드는 날, 내가 꼭 이 연분홍 치마와 저고리를 장롱에서 꺼내 입을거야. 내가 열 아홉에 시집올 때 입었던 이 옷을…”
결국 이 말은 생전의 마지막 말(유언)이 돼 버렸다. 홀어머니는 돌아올 기약 없이 전국을 떠도는 아들을 그리워하다 1945년 봄, 과로사로 쓸쓸하게 세상을 떴다. 뒤늦게 머나먼 객처에서 이 소식을 접한 손로원은 통한의 눈물을 흘리며 철원 산골짜기의 어머니 묘소를 찾아 참회의 눈물을 펑펑 쏟았다.

그리고 어머니의 넋처럼 남겨진 어머니의 연분홍 치마 저고리…
1953년 봄, 손로원은 젊은 시절 애틋했던 어머니의 연분홍 치마 저고리를 품에 안고 어머니를 그리며 <봄날은 간다> 노랫말을 지어 작곡가 박시춘(朴是春, 1913~1996)에게 보냈고, 그 이듬해인 1954년 대구에 있는 유니버살레코드 회사에서 A면-남인수의 <고향은 내사랑>, B면-백설희의 <봄날은 간다> 단 두곡이 수록된 유성기 음반(SP판)으로 세상에 나왔다.

<봄날은 간다>의 인기는 폭발적 이었다.
슬픈 봄날에 투영된 전쟁에 시달린 사람들의 한 맺힌 내면풍경을 그려낸 것 같은 노랫말에, 백설희의 낭랑한 목소리가 가사의 분위기와 어우러지면서 오히려 더 슬프게 느껴져 일반 대중의 마음을 단숨에 사로잡았던 것이다.

이 곡 외에도 손로원은 1973년(12월11일) 부산에서 불의의 교통사고로 62세에 세상을 뜰 때까지 부지런하게 3000여 곡의 노랫말을 지어 남겼다.
<귀국선>(이인권)을 시작으로 <인도의 향불>(현인), <샌프란시스코>(장세정), <휘파람 불며>(도미), <물방아 도는 내력>(박재홍), <백마강>(이인권), <잘있거라 부산항>(백야성), <한강>(심연옥), <홍콩아가씨>(금사향), <님 계신 전선>(금사향), <경상도 아가씨>(박재홍), <비 내리는 호남선>(손인호) 등의 당대 히트곡들이 그의 노랫말로 돼 있다.

그럼에도, 강원도 춘천 남이섬 노래박물관 경내에 있는 작곡가 박시춘 노래비 표석 앞면 오른쪽 위에 <봄날은 간다>악보와 가사가 새겨진 자그마한 동판이 부착돼 있는 것 외엔, 따로 그를 기억할 만한 노래비 같은 게 없어 아쉬움이 크다.

▲ <봄날은 간다>가 수록된 백설희 히트곡선집 <아메리카 촤이나 타운> 앨범 자켓.

백설희… ‘꾀꼬리같은 목소리’로 정평
노래를 부른 백설희(白雪姬, 1924~ 2010)는 서울 출신으로 본명은 김희숙. <봄날은 간다>가 백설희의 실질적 데뷔곡이자 대표곡이 됐다. ‘백설희’라는 예명은 <목포의 눈물>을 부른 이난영의 남편인 작곡가 김해송이 케이 피 케이 악단에 있을 때 지어줬다. 김해송은, “에베레스트 산의 눈이 낮이나 밤이나, 여름이나 겨울이나 녹지않고 눈부신 자태를 드러내듯이 연예인으로서 높은 곳에서 식지않는 열정으로 빛나라!”는 뜻으로 지었다고 그 작명배경을 얘기했다.

‘꾀꼬리 같은 목소리’라는 세상의 평을 얻은 백설희는, 1943년 조선악극단을 시작으로  KPK(케이 피 케이)악단, 새별악극단 등에서 노래와 연기활동을 펼쳤다. 1950년 <꾀꼬리 강산>이라는 타이틀로 첫 앨범을 냈으나, 6.25전쟁으로 빛을 보지 못하다가 1953년 작곡가 박시춘을 만나 그 이듬해 그의 신곡 <봄날은 간다>를 불러 인기가수가 됐다.

그녀는 잘 알려져 있다시피 남편은 영화배우 황해(본명 전홍구)로 슬하에 4남1녀를 뒀는데, 아들인 전영록과 손녀인 전보람(걸그룹 티아라의 멤버)이 같은 가수의 길을 걷고 있다. 2010년 미국 샌프란시스코에서 고혈압 합병증으로 세상을 떠나기까지 <봄날은 간다>를 비롯해 <물새 우는 강언덕>, <아메리카 차이나타운>, <샌프란시스코>, <하늘의 황금마차>, <칼멘야곡>, <청포도 피는 밤>, <목장 아가씨> 등의 히트곡을 남겼다.

▲ 우정사업본부에서 2019년 발행한 <현대 한국인물(가수) 시리즈> 우표 인물로 선정되기도 했던 백설희.

지난 2019년에는 우정사업본부에 의해 ‘현대 한국인물(가수)’시리즈 우표(액면가 380원)인물로 가수 현인과 함께 선정돼 ‘광복 이후 서민들의 희로애락을 노래하며 그 시대를 풍미했던 두 가수의 기념우표’가 발행되기도 했다.

<그리스·로마신화>의 저자인 소설가 이윤기(1947~2010)는, 같은 이름의 자신의 소설 <봄날은 간다>에서,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흘러가는 봄날은 처참한 것이다. 시간에 저항하는 인간에게 <봄날은 간다>만큼 잔인한 노래는 없다”고 했다.
그러나, 누가 시간에, 세월에 저항하랴.…
손로원도 가고, 백설희도 가고… 그리고 지금, 봄날도 속절없이 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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