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독자수필-귀농아지매 장정해 씨의 추억은 방울방울

밭에 오르는 비탈부터
솜털 보송보송한 참쑥이
와글와글하다...

오월이 되면서 얼굴과 손이 눈에 띄게 까매진다. 세수를 하고 거울을 봐도 눈 주위로 볼따구니와 콧등이 불에 그을린 듯 까무잡잡한 것이 촌티가 아주 제대로다. 젊어서는 분명히 꺼렸는데 이제는 그저 예사롭다.
4월의 막바지 저온현상에서 벗어나면서 배나무 벤 자리에 변화에 강한 것부터 모종을 심는다. 남편은 고추모종을 비롯해서 토마토, 오이, 호박, 딸기, 참외, 쌈채소를 가지고 밭으로 내려가고, 나는 집 울타리 밖 밭을 건너 쑥밭으로 향한다. 병원에서 막 퇴원한 친구가 소화가 잘 안 돼서 쑥이 많이 들어간 떡을 먹고 싶다고 부탁을 해온 터였다. 나도 허리관절이 시원치 않지만, 집 옆으로 건너편에 1천 평 가까이 되는 땅을 여러 해 동안 묵히는 바람에 자연 쑥밭이 돼버린 곳이 있어 기꺼이 쑥을 뜯어 주겠노라 약속을 했다.

동네마다 다 달라서 중부지방에선 4월 한 달이 적기지만 여기 같은 산골에선 오월 초에도 쑥을 거둔다. 이맘때 잎이 보드랍고 향이 풍부하다. 3월 쑥은 잘아 먹잘 게 없고, 오월도 중순이 넘어가면 심이 생겨 질겨진다. 졸졸 흐르는 골짜기엔 돌미나리가 오글오글하고, 여기도 청포묵 같은 도롱뇽 알이 타래를 지은 게 또 다른 세상으로 들어가는 입구 같다. 개울 건너 밭으로 오르는 비탈에서부터 솜털 보송보송한 참쑥이 와글와글하다. 정신없이 쑥을 뜯는데 청개구리가 ‘왁왁’ 울고, 갖가지 새들이 날 보러 나와 지저귄다. 저들의 영역에 불쑥 찾아든 불청객이라 견제하는지 옆으로, 머리 위로 날며 쫑알거린다.

밭둑에 쑥을 뜯다 보니 새털이 흩어져 있다. 깃털을 보니 꿩은 아닌데 수리나 매에게 먹힌 흔적이다. 여기는 생존의 질서가 살아있는 자연의 한복판이다. 본격적으로 해가 들고나니 더위가 슬슬 올라오는데 실전 노동은 만만찮다. 시간이 갈수록 몸은 수그러져 허리를 숙이다, 쪼그려 앉다가, 무릎을 세우다가 시간이 더 지나며 체중을 주체할 수 없어 땅에 퍼져 앉아 엉덩이로 밀며 나간다.

종아리가 뭉치고 목과 등이 굳어 결국엔 드러누워 쉬면서 나무 사이로 푸른 하늘과 구름 날아가는 새를 쫓다가 일어나 다시 시작한다. 쑥인절미 두 말을 할 요량이면 적어도 7~8㎏은 뜯어야 하는데 자루를 들어 이래저래 봐도 아직 턱없이 부족하다. 이때 반가운 아군의 입성이다. “얼마나 했어?” 모종을 다 심고, 쑥 뜯는 일이 더딘 줄을 알고 남편이 올라왔다. “반도 못 했어.”

오월의 햇살은 벌써 30도를 올리며 뜨거워져서 우리는 좀 더 넓은 나무 그늘을 찾아가 열심히 쑥을 뜯었다. 불어오는 바람에 땀을 식히며 겉옷이며 모자며 다 벗어 던졌다. 남편이 거든 덕에 쑥자루가 쉽게 차올랐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만난 ‘꽃마리’. 마이크로렌즈로 찍어야 하는, 세상에서 제일 작은 꽃이 아닐까. 자세히 보면 아무리 작아도 있을 건 다 있다. 발견하는 기쁨은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다.

큰 고무대야 두 개에 물을 받아 쑥을 씻는 동안 남편은 솥을 걸고 물을 끓인다. 물이 설설 끓기 시작하면 마지막으로 식초 푼 물에 담가놓은 쑥을 건져 파랗게 데치고, 데친 쑥은 소쿠리로 건져 찬물에 헹궈낸다. 남편이 물기를 짜낸 쑥덩이를 몇 개씩 비닐에 포장해 냉동고에 넣고 꽁꽁 얼려서 내일 택배로 보내줄 참이다.
쑥을 냉동고에 넣고 기어들어가 전기장판에 눕자마자 완전히 뻗어 버렸다. 효율성을 가지곤 결코 잴 수 없는 삶이다. 내 속에서 날마다 살아 있는 생명의 흔적을 갖고 싶다. 나도 그 꽃마리처럼 살아있는 모습으로 하나님께 발견되고 싶은 것일지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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