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터뷰 - 수필작가 이근후

사는 게 쉽지가 않다. 사람들과 부딪치며 살다보니 처신이 어렵다. 특히 곤경에 처했을 때 헤쳐 나올 방법과 삶의 행로를 못 찾아 헤맬 때가 많다.
이근후 박사는 정신과전문의로 이화여대에서 50년간 환자를 돌보고 학생을 가르쳤다. 그러나 그는 정신과전문의라기보다 수필작가로 더 많이 알려져 있다. 40만부가 팔린 ‘나는 죽을 때까지 재미있게 살고 싶다’ 등 20권의 수필집을 내놓아 작가로서의 명망이 더 높다.
그는 오랜 삶의 연륜을 바탕으로 인생을 대하는 태도에 대한 명쾌한 조언을 담은 ‘백 살까지 유쾌하게 나이 드는 법’이란 수필집을 최근 펴내기도 했다. 이근후 박사를 만나 삶의 의미와 행로를 어떻게 찾아야 하는지 얘기를 들어봤다.

 

“인간세상은 참 좁습니다.
 그러므로 스치는 인연도
 무례하게 대해선 안 됩니다.”

돈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노년에 힘들지 않을 만큼만...

먼저 이 박사는 “돈, 그까짓 거 없어도 괜찮다는 무욕, 무심의 생각으로 사는 게 편하다.”며 돈 얘기부터 했다.
“100여 명의 직원을 두고 운전기사가 모는 차만 탔던 사장이 파산으로 허드렛일을 할 처지에 적응을 못하는 모습을 봤습니다. 파산한 그에겐 돈이 되레 몸과 마음을 묶고, 자유를 제약하는 나쁜 것이 되고 만 것이죠.”

사람은 지위와 돈을 잃고 추락하면 견디기가 힘들기에 돈을 많이 가지려 하지 말고 노년의 삶에서 흔들리지 않는 위신과 존엄을 지킬 만큼의 준비가 있어야 한다고 조언한다. 그 이상의 돈을 탐내면 피로하다.
“제 어머니는 매우 검소하게 사셨습니다. 돈이 있으면 있는 대로, 없으면 없는 대로 잘 사셨던 것이죠 이게 바로 돈과 맞는 가장 건강한 관계입니다.”

대화에서는 공통소재를 먼저 찾아야
나이가 들면 말이 통하는 어른이 돼야 한다며 올바른 소통에 대해 얘기를 이어갔다.
“젊었을 때 노인들과 대화를 할 때면 늘 두 가지 의문이 있었습니다. 그 하나는 ‘왜 노인들은 영양가가 없는 말을 많이 할까?’, 또 다른 하나는 ‘왜 목소리가 저렇게 큰가?’였죠. 대개 노인들이 말을 한 번 시작하면 구구절절 이어지는 경우가 많습니다. 듣는 사람 입장에선 보면 짧게 마무리돼야 할 이야기가 늘어지다 보니 말의 영양가를 느끼질 못합니다.”

노인의 말이 길어지는 것은 첫째, 집중력 저하 때문이라고 이 박사는 말한다.
“말에는 목적이 있습니다. 그 목적에 도달하려면, 기둥을 거쳐 잔가지 순으로 차근차근 얘기를 해야 하는데 노인들은 얘기를 하다 집중력이 떨어져 순서를 놓치게 되므로 말이 길어질 수밖에 없어요. 또한 노인들은 살아온 햇수만큼 경험이 방대해 하고 싶은 말을 많으므로 말이 길어지는 겁니다. 대화의 톤이 높아지는 것은 나이가 들면서 귀가 어두워져 상대가 내 목소리를 못 들을까봐 걱정이 돼 큰 소리로 얘기를 하는 것이죠.

말문을 닫으라는 게 아니라 우선 말을 줄이고 상대의 이야기를 들어야 합니다. 소통을 잘하려면 서로간 이해가 필요합니다. 대화에 앞서 이해의 폭을 넓힐 소재를 찾고 간추려 말하면서 공통분모를 많이 갖는 게 좋은 소통 방법입니다.”

사람들은 여섯 다리 거치면 연결
좁은 세상 남을 정중하게 대해야

때와 장소를 가리지 말고 사람들에게 정중한 예의를 보여야 한다며 이 박사는 그 방법을 들려줬다.
“미국의 사회심리학자 스탠리 밀그램은 1967년 ‘좁은 세상 실험’을 통해 지구상 90억 인구 중 서로 다른 지역에 있는 모르는 사람들이 몇 단계를 거치면 연결되는지를 알아보는 실험을 했습니다. 그 결과, 평균적으로 여섯 단계를 거치면 전 세계인이 서로 친구사이가 된다는 것을 밝혀냈습니다.
2008년 마이크로소프트사에서 메신저 대화창을 분석해 통계를 냈더니 사람들간 평균 6.6개의 연결고리가 있음을 발견했습니다. 페이스북의 연구에서는 연결고리수가 감소해 세 단계만 거치면 모르는 사람끼리도 연결된다는 것을 확인했습니다.”

이 박사는 개인적으로도 세상이 좁다는 체험을 했다고 한다.
“한 번은 택시를 탔는데, 비슷한 연배의 택시기사가 저를 보더니 ‘대구사람이냐?’고 묻더군요. 제 말투에서 대구 억양을 듣고 반가이 대해주며 택시기사는 느닷없이 ‘혹시 아무개라는 사람을 아세요?’라고 물었어요. 그래서 저는 ‘알고말고요. 그 사람 모르면 간첩이지요. 나 그 친구한테 골목에서 붙잡혀 맞은 적이 있었어요.’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러자 기사가 그제야 ‘아이고 죄송합니다. 저가 바로 그 아무개입니다. 철없었을 때 주먹으로 남에게 피해를 줬었는데 이제는 개과천선하고 이렇게 살고 있습니다.’라고 그러더군요.”

살면서 다시는 만날 일이 없을 것 같았던 깡패출신 운전기사를 우연히 만난 것이다.
이 박사는 스치는 인연이라도 함부로 여겨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나이가 들면 무의식중에 나이어린 사람을 마구 대하곤 합니다. 하지만 세상이 좁으니 자신이 저지른 무례함이 절대 사라지지 않는다는 점을 명심해야 합니다. 언제나 남을 정중한 예의로 대해야 합니다.”

행복을 주고 오래 기억되는 삶을...
끝으로 이 박사는 마음이 잘 맞고 좋아하는 친구를 곁에 두고 살면 삶이 행복하고 풍요로워진다면서 우정에 대한 이야기를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중학교 2학년 때 박도일이라는 친구를 만나 65년을 넘게 우정을 쌓았습니다. 그는 또래 보다 조숙해 아는 것이 많았죠. 중학생 시절, 그의 주도로 독서회가 결성돼 매주 모여 문학 서적을 읽었습니다. 그는 축음기에 LP판을 돌려 어려운 교향곡을 틀어놓고 해설을 해주기도 했습니다. 제가 평생 시와 그림을 즐기는 예술적 취향을 갖게 된 것은 그 친구의 영향이 컸습니다.”

2014년 이 박사가 네팔로 의료봉사를 갔을 때 그 친구가 죽었다는 연락을 받았다고 한다.
“친구의 부고를 받고 하늘이 내려앉는 것 같은 충격으로 얼이 빠졌었습니다. 그에 대한 그리움과 추억은 지금도 생생히 남아있습니다. 친구로부터 받은 좋은 자극과 추억은 무한하기에 설명하기가 어렵습니다.”
이근후 박사는 여생을 박도일이 걸어온 것처럼 누군가의 행복에 기여하며 오랫동안 기억에 남는 삶을 살고 싶다고 말하며 인터뷰를 끝냈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