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80)

"인류의 눈과 귀를
끌고 다니던 부직포가
어떻게 패션계 흔들지..."

부직포(non-woven fabric)는 직조과정을 거치지 않고, 섬유를 가로 세로의 방향 없이 얽어 얇게 배열한 후, 합성수지 접착제로 결합시켜 만든 피복 재료의 하나다. 1930년대에 몇몇 섬유회사가 목화 폐기물 활용 방법으로 부직포 제조에 성공했다. 초기에는 솜이나 비스코스레이온이 사용됐으나, 지금은 폴리프로필렌이나 폴리에스테르 또는 비스코스섬유 등이 원료로 사용되고 있다.

당초 의복에 심을 넣는 등의 부자재로 사용되던 부직포가 발전을 거듭하며 점차 그 용도가 다양해지고 있다.
자동차나 전자제품 내장재 등 산업용으로, 또 건축용으로 바닥, 벽면, 천정재로 쓰이고 있다. 예쁜 조화와 포장지, 보건 위생용으로, 냅킨, 기저귀, 생리대에 이르기까지 그 쓰임새가 매우 넓다. 특히 미세입자까지 걸러낼 수 있어 공기, 물, 기름 등의 필터로도 사용된다. 이번 코로나19 사태에서 온 국민이 쓰고 있는 마스크 KF94의 핵심도 바로 ‘멜트블론(MB. Melt-blown)’이라는 부직포 필터다. 미세섬유로 된 부직포에 정전기를 띠게 처리해서 침방울은 물론 미세먼지까지 흡착하도록 만든 필터다. 이 필터의 70%는 국산, 30%는 중국산이었으나 갑자기 늘어난 수요와 중국에서의 수입까지 막히면서 한때 대란을 겪었다.

뿐만 아니라 이번 사태에서 의료진과 구급요원들이 착용하는 레벨D급의 방호복 역시 부직포로 돼있다. 전염병 방호는 물론 원자로, 클린룸 등에서 일하는 사람들은 반드시 작업환경에 맞는 1회용 방호복을 입어야 하고, 그 방호복이 부직포로 만들어진다. 부직포는 우주복에도 사용된다. 코로나19 난리판에 이탈리아에서는 의료진의 방호복 부족이 심각해지자, 이태리의 명품 패션 브랜드인 아르마니가 3월26일, 현지의 모든 공장에서 방호복 생산을 시작한다고 발표했다. 놀랄 일이다. 한 보고서에 의하면, 세계의 산업용 방호복시장이 2019년부터 2025년까지 225억7천만 달러 규모의 시장으로 성장할 것으로 예측했다. 이번 코로나19 사태 같은 의료장비용 품귀 현상까지 감안한다면 엄청난 규모의 성장이 이뤄질 것이다.

과거 흑사병의 비극이 중세 유럽의 암담한 현실을 바꾸는 계기가 됐던 것처럼 이번 코로나19 사태가 끝나면, 세상은 커다란 변화를 겪게 될 게 분명하다. 하찮아 보이던 부직포가 생명을 구하는 일에 이렇게 귀하게 사용되리라고 누가 감히 생각했을까.

부직포의 용도가 한없이 많아진 지금까지도 패션에서 부직포는 옷의 부자재나 특수복에 일부 사용될 뿐 ‘겉옷’을 만들지는 않는다. 부직포가 보기 좋게 늘어지는 드레이프(drape)성이 없고, 알약 같은 필(pill)이 많이 생기기 때문이라는 견해도 있으나, 용도에 따라 두께를 변화시킬 수 있고, 가볍고, 구김도 없고, 보온성도 좋다. 올이 풀리지 않기 때문에 옷을 입고 가위로 길이를 잘라내도 되고, 솔기도 접착제로 이을 수 있는 장점까지 있다. 무엇보다 너무 값이 싸고 보이지 않는 곳에만 사용하던 습관이 겉옷화를 막아왔는지도 모른다.

코로나19 사태를 통해 인류의 눈과 귀를 끌고 다니던 부직포가 이후 어떻게 패션계를 흔들지 자못 기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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