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송명견 교수의 재미있고 유익한 옷 이야기(79)

"마스크 안 쓰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인류가 나아가야"

마스크 2장을 사기 위해 약국 앞에서 찬비를 맞으며 1시간 동안이나 추위에 떨던 17세의 고교생이 폐렴으로 목숨을 잃었다. 경북 경산에서 일어난 일이다. 검사결과, 코로나19 때문이 아닌 사망사고로 밝혀졌으나, 부직포 조각을 이어 만든 그까짓 1500원짜리 마스크가 무엇이기에 생명을 잃기까지 했는지 억장이 무너진다. 마스크는 어느새 목숨을 걸어야 할 만큼 ‘귀하신’ 몸이 됐는가.

인간이 얼굴에 무엇인가를 쓴 것은 구석기시대로, 9000여 년 전의 돌로 된 마스크가 남아있다. 이후 마스크는 인류와 더불어 참으로 많은 변화를 겪는다. 초기의 마스크는 제사 같은 의식이나 주술적 목적으로 초월적인 힘을 행사하는데 사용됐으며, 보호용, 놀이용, 위장용, 공연용 그리고 패션용으로까지, 시대에 따라 용도와 디자인이 수없이 바뀌어 왔다. 요약하자면, 마스크의 기능은 인간에게 두려움을 주거나, 인간이 즐기는 도구가 됐거나, 인간을 보호하는 역할을 했다.

마스크를 보건 위생에 사용하기 시작한 것은 전 유럽을 위협했던 흑사병 때문이었다. 의사들은 흑사병이 공기를 통해 감염된다고 믿고, 마스크 안에 필터 격으로 달콤하거나 강한 냄새가 나는 재료(주로 라벤더)를 채운 새부리 모양의 제품을 만들어 썼다. 환자가 아니라 의사 스스로를 보호하기 위해서였다. 이렇게 시작된 마스크가 18세기에 이르러 ‘가면무도회’라는 유희를 통해 대유행시대를 맞는다. 이 놀이는 단순한 즐거움으로 끝나지 않았다. 가면 뒤에서 인간들은 온갖 독소들을 뿜어냈다. 1755년 맨체스터의 한 신문 기자가 가면무도회는 부도덕, 불경, 음란 등 모든 종류의 죄악을 저지를 기회를 파는 상점이라고 했을 만큼, 이 시기의 마스크는 인간의 음흉한 악행을 부추기는 역할을 했다.  

오늘날처럼 입과 코를 가려 공기를 통과시킬 수 있도록 만든 보건용 마스크는 1897년 프랑스 외과의사 폴 베르제가 처음 사용했다. 수술할 때 의사의 입이나 코에서 나오는 세균으로부터 환자를 보호하기 위해 고안한 것이다. 이런 모양의 마스크는 1918∼1919년 2500만 명 이상 희생자를 낸 스페인독감이 유행할 때 전 세계 대중에게까지 널리 보급됐다. 세균이나 바이러스를 완전히 차단하기엔 역부족이었으나, 1932년 중국 상하이 지역에 콜레라가 창궐했을 때, 이 마스크는 많은 인명을 구했다. 마스크를 사용한 중국인의 사망률이 7.4%인데 비해 마스크를 쓰지 않은 조계지(租界地)의 외국인 사망률은 30%를 넘었다는 통계도 있다.

2010년대 메르스를 겪으며 마스크는 더욱 일반화됐다. 바이러스나 세균뿐만 아니라, 대기오염 문제가 심각해지면서 거의 생활필수품이 됐다. 그래도 이때까지는 마스크가 미세먼지도 막고 패션에도 활용되면서 개성미를 뽐내는 낭만도 있었다. 그러나 코로나19의 등장은 마스크 대란을 일으키며, 품귀현상을 몰고 와 생명을 빼앗는 결과까지 빚어냈다. 요컨대 품질 좋고, 더 값싼 마스크를 빨리, 많이 만들어 내는 게 중요해졌다. 그러나 동시에 우리가 주목해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마스크 안 쓰고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세상을 향해 인류가 나아가야 한다는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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