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성신여대 명예교수 정헌석 박사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로 정년퇴직해 지금은 이 대학의 명예교수로서 ‘삶의 동력이 되는 긍정과 인간관계’를 주제로 한 강의를 하고 있는 정헌석 박사를 만났다.
정 박사로부터 긍정과 관련 유익하고 재미있는 얘기를 들어봤다.


삶을 좋은 방향으로 이끄는 게 긍정
결핍․열등감이 긍정의 자원 될 수도
가난은 거대한 터빈을 돌리는 동력

어눌한 발음 극복하고 긍정의 힘 얻으려
긍정․인간관계 관련 책 읽고 코칭상담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하고 국내 굴지의 화장품기업인 아모레퍼시픽에 연구원으로 입사했습니다. 하지만 연구실 안에서의 정적인 생활보다 활력이 있는 교육자가 되고 싶어 서울대 대학원에 진학해 경영학 박사를 취득하고, 잠시 SK에서 회계실무를 담당했지요. 그 후 성신여대 경영학과 교수를 거쳐 기획처장을 지냈습니다. 그리고 1990년대 초반 베스트셀러가 된 ‘즐거운 회계산책’ 등 4종의 회계서적을 펴냈지요.”
정 박사는 지금에 와서 전공인 회계분야와 전혀 다른 긍정 관련 강의를 하게 된 배경을 다음과 같이 들려줬다.

“저는 어눌한 발음으로 인한 콤플렉스로 심적 고통을 겪었습니다. 이를 극복하고 교수의 길에 들어서기까지 학과공부 못지않게 긍정의 힘을 얻고자 책을 엄청나게 많이 읽었습니다. 이런 노력 끝에 교수로 정년퇴직한 후에는 긍정과 인간관계 상담, 코칭심리학을 접하고 코칭연구원을 운영하고 있지요. 현재는 긍정교육을 확장하려는 생각으로 3월에 긍정 관련 강좌를 개설하려고 준비하고 있습니다.”
정 박사는 ‘긍정을 매만지면 부정이 보이지 않는다’는 말이 있다면서 이런 얘기를 했다.

성공을 거두는 사람 100%는
‘긍정마인드’를 가진 사람

“대개의 사람들은 사업을 하려할 때 주변사람들로부터 ‘그게 되겠어?’, ‘어렵잖아’, ‘힘들 걸’이라는 부정적인 말을 듣게 됩니다. 반면에 성공하는 사람은 성공에 대한 열망과 긍정적인 마인드로 일을 해 성공을 거둡니다. 부정적인 사고를 갖고 일을 하는 사람은 대부분 실패하죠. 긍정적인 생각을 갖게 되면 가능의 방향을 찾게 되며, 성공을 일궈내는 동력을 갖게 됩니다. 따라서 성공을 거두는 사람의 100%는 긍정마인드를 가진 사람이라고 볼 수 있죠.”
술을 빚을 때 고두밥을 보고 ‘이건 안 될 것 같은데’, ‘망칠 것 같은데’ 하면서 술을 빚으면 곰팡이가 피며 술이 제대로 만들어지지 않는다고. 반면 고두밥에 ‘술이 잘 될 거다’라며 긍정의 힘을 불어주면 맛나는 술이 빚어진다고 정 박사는 말했다.

이는 과학자들의 실험으로도 확인된 것이라며, 사업을 하면서 부정의 말을 반복하면 부정마인드가 원인이 돼 사업이 실패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콜럼버스는 지구 저 편에 미지의 신천지가 있다는 확신과 긍정으로 험한 항로를 헤쳐 나가 아메리카대륙을 발견했고, 에디슨은 주변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확신과 긍정의 결기로 수많은 실패 끝에 세상을 밝히는 전구 개발에 성공을 거뒀습니다. ‘긍정이란 되는 쪽으로, 밝은 쪽으로 생각하는 태도’입니다. 삶이 어둡고 힘들 때, 밝고 좋은 방향으로 자신의 삶을 바로 잡아주는 것이 긍정입니다.”

긍정바이러스 전하면 인정으로 돌아온다
인간관계에서 누구에게든 ‘인정’이라는 긍정바이러스를 전해주면 손해를 보지 않을뿐더러 덕을 보게 된다며 정 박사는 이런 얘기를 들려줬다.
“절친의 사촌형을 알게 됐는데, 서로 서울대 동문인데다가 연령차이가 크지 않아 어떻게 대해야 하나 고민하다가 친구 사촌형이라 그냥 ‘형님’이라 부르며 깍듯이 모셨습니다.
미국에 교환교수로 가 있다가 1년 만에 귀국했었는데, 미국에 다시 들어가기 전에 그 형님에게 인사나 하고 가야겠다고 생각해 그를 찾아갔습니다. 이분은 포스코 자매회사의 사장으로 후덕한 분이셨습니다. 잠시 화장실에 다녀오는 척하고 자리를 비우시더니 돌아와 먼 길에 여비를 보태라며 봉투를 주시더군요. 나중에 봉투를 열어보니 1000달러나 들어있었어요. 당시로는 제게 과분한 돈이었어요. 이처럼 남에게 친절과 정을 베풀면 따뜻한 인정으로 돌아오는 게 인간관계입니다.”

정 박사는 하늘의 섭리는 실로 신비롭다면서 이번에는 결핍과 열등감이 긍정의 자원이 된 사례를 들려줬다.
“에드바르 뭉크는 우울과 분노로 휩싸인 어둡고 흉측한 사람의 모습을 그려낸 화가입니다. 그는 5세 때 어머니를, 14세 때 누이를 잃었고, 아버지마저 잃어 평생 죽음의 공포와 불안에 시달렸다고 합니다. 여동생 중 한 명도 어린나이에 정신병 진단을 받았고, 다섯 형제 중 유일하게 결혼했던 남동생 안드레아도 결혼 후 몇 달 만에 사망했습니다. 불행의 그림자가 끊임없이 그에게 다가왔고 결핍으로 꼬인 불행한 삶이었습니다. 그의 불안을 잠재울 수 있는 방법은 오직 그림이었던 것이죠.”
뭉크는 그림 이외의 가족은 없다는 마음으로 오직 그림 그리기에만 매달렸다. 그는 작품을 판 돈으로 땅을 사고, 그림을 그리다가 80세에 세상을 떠났다.

“극도의 가난이 엄청난 은혜가 됐죠”
정헌석 박사는 항상 자신이 모자라고 결핍했기에 이를 채우려고 뛰다보니 교수가 됐다고 말한다. 또 누울 곳만 있어도 원이 없겠다는 소망을 넘어 지금은 어엿한 아파트를 마련했다고도 했다. 극도의 가난이 엄청난 은혜가 돼 오늘을 일궈냈다고 했기에 가난은 거대한 터빈을 돌리는 동력이었다고 그는 강조했다.
정 박사는 남에게 베푼다는 것은 엄청나게 남는 장사라면서, 주한미국대사였던 제임스 레이니 대사의 베풂 뒤에 얻은 훈훈한 미담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레이니 대사는 한국 근무를 마치고 애틀랜타의 에모리대학 교수로 갔었는데, 터는 넓지만 작은 집에서 혼자 사는 노인을 만났다고 합니다. 그 노인이 애처롭게 보여 ‘안녕하십니까?’라며 아침저녁으로 인사를 건넸다고 합니다. 어쩌다 그 노인이 안 보일 땐 집안에 들어가 안부를 묻고 음식을 드렸는데, 어느 날 보이질 않아 알아보니 별세했다고 합니다. 기가 막힌 일은 이 노인이 세상을 떠나며 레이니 대사에게 수억 달러의 거액을 유산으로 남긴 것입니다. 알고 보니 이 노인은 코카콜라 회장이었고 회사주식도 4% 가지고 있었다고 합니다. 더 멋진 것은 레이니 대사도 노인에게 받은 돈을 한 푼도 건드리지 않고 에모리대학에 기부했다는 사실입니다. 이건 어쩌면 천국에서나 들을만한 이야기입니다. 우리 문화로나 상상으로는 전혀 납득이 안 되는 미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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