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미국농부 김선우 기자

동아일보 기자생활 12년차이던 40세 젊은 나이에 김선우 기자는 미국 농촌에 가서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경험과 기술도 없이 낯선 미국에 간 그는 네이버 비즈니스판 인터비즈를 통한 인터넷매체에 ‘미국농부 김선우의 세상 엿보기’란 칼럼을 쓰고 있다. 역시 인터넷매체인 아웃스탠딩에 미국 IT관련 기사도 쓰고 있다. 농사와 함께 기자생활을 이어가는 김 기자의 미국농부 도전담을 들어봤다.

“소비·소유를 줄이면서
 남아도는 시간에 심리안정
 성찰, 공상 통해 창의력 얻고
 가족화목에 집중해 행복”

미국유학 5년차에 가족 모여살고자
12년 기자생활 청산하고 미국행

김선우 기자는 큰딸을 데리고 미국에서 유학중인 아내를 뒷바라지하는 기러기생활을 했다. 어린 둘째딸은 할머니가 맡아 키웠다. 미국유학 5년차인 아내의 박사 학위가 1년이 채 안 남았을 즈음, 그는 가족과 함께 살고 싶은 열망을 느꼈다.
“가장으로서 남편, 아빠 역할에 소홀히 한 죄책감이 들었죠. 아내 곁에 가야겠다는 충동으로 사표를 냈습니다. 기자생활 하면서 제대로 된 특종을 쓰지 못했지만 사회와 국민에게 좋은 소식과 계도기사를 전하는 보람을 느꼈어요. 그러나 기자생활에 연차가 쌓이면서 신참기자들에게 밀리겠다는 위기감을 느꼈어요. 이것이 미국행을 결심한 이유이기도 했습니다. 당시만 해도 미국 시골에서 농사를 짓겠다는 생각은 꿈에도 안했어요.”
미국에서 온 가족이 재회해 1년여의 생활은 행복하고 편안했다고 그는 말했다.

외국에서 학사․석사 취득했지만
직장과 아르바이트 못 구해 방황

그러나 1년이 넘도록 여전히 집에서 놀고먹는 처지가 되면서 구직에 대한 부담이 쌓여갔다. 이때 한국의 헤드헌터로부터 기업 홍보일을 해보지 않겠냐는 제의가 있었지만 애써 외면했다고.
학생 때나 기자생활시 집에서 보낸 적이 없었던 터라 집에서 지내는 일이 고역이었다는 김 기자. 그때 농장에서 인턴을 구한다는 광고를 접했다. 농사경험이 전무한터라 어렵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 주저했지만, 귀촌도 정착의 옵션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확신을 갖고 인턴에 지원했다.
그러나 첫 농장주는 김 기자가 40대의 동양인에, 농장일을 잘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는지 채용을 기피했다. 두 번째 소개받은 농장은 집에서 멀리 떨어진 섬에 있는 곳이었는데, 이곳에 채용됐다. 김 기자는 농장일을 하면서 손목을 많이 쓴 탓에 손목터널증후군이 와 일을 할 수가 없었다. 그는 뭐라도 해보려고 카페와 마트의 문도 두드렸다.

김 기자는 캐나다 브리티시컬럼비아대학에서 인문지리학을 공부했으며, 미국 시애틀 소재 워싱턴대학에서 경영학 석사를 받았었다.
“아르바이트 일자리 얻기에 학력이 너무 높은가 싶어 학위 취득사실을 감추고 원서를 냈지만 연락이 없었어요. 찬밥, 더운밥 가릴 때가 아니라 전기기술을 배우려고 전문대 교수를 만나기도 했고, 아는 형을 따라 인테리어 기술도 배웠죠. 자영업 환경은 한국이나 미국이나 냉혹하기 그지없었고, 사무직을 구할 가능성도 없다고 느꼈습니다.”
밥벌이를 하기 위해선 한국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이때 니어링 부부가 쓴 ‘조화로운 삶’을 탐독하던 아내가 한국이든 미국이든 귀촌을 하자고 제안했다.

미국에 머무를 방법이 뾰족이 없던 그는 아내의 말에 따라 미국에서의 귀촌을 결심했다.
“식재료 조달이 용이하고 생활비도 줄일 수 있겠다는 생각으로 미국 농촌에서 살아보기로 했습니다. 아이들 학교나 이사 방법 등 걱정되는 부분이 많았지만 좋은 땅만 찾으면 일단 이사부터 한다는 생각으로 땅을 찾아 나섰어요. 그렇지만 땅이 괜찮아 보여 찾아가면 벌써 다른 사람이 살고 있고. 암튼 땅을 구하려고 여기저기 숱하게 다녔습니다.”
우여곡절 끝에 터전을 마련한 그는 조립식 집을 사서 들어갔다. 인테리어 공사는 생략했다. 동양인이 드문 벽지 농촌이었지만 아이들은 잘 적응했다.

소유 줄이면서 가족대화 늘리려
가전제품 없애고 소비절약 실천

농사로 얻는 소득이 적으니 소비와 소유를 줄이면서 남는 시간에 가족간 대화에 집중할 수 있어서 좋았다.
그는 소비를 줄일 몇 가지 생활규칙을 정했다.
먼저 TV, 스마트폰, 전자레인지, 식기세척기, 빨래건조기, 다리미, 토스트기, 전기밥솥을 없앴다. ‘8無’ 집안이 된 것이다. TV를 보는 시간을 없애니 가족간 대화로 화목해지고 생산적인 일이 늘어났다. 자녀들은 TV를 못 보니 그 시간에 책을 보게 됐다. TV와 스마트폰 유지비용도 들어가지 않으니 일석이조였다. 김 기자는 스마트폰 대신 통신비가 적은 폴더폰을 쓴다.

김 기자는 귀촌 후 소비를 줄인 여섯 가지 방법도 소개했다.
첫째, ‘기념일 안 챙기기’다. 생일과 크리스마스 선물은 없앴다. 둘째, 집안 주요 생활집기인 커피믹서, 피자스톤, 의자와 벤치 등은 중고품을 사 썼다. 세 번째 소비원칙은 ‘냉파’(냉장고 파먹기)다. 냉장고가 50%이상 차면 더 이상 식료품을 사지 않고 냉파를 시작한다. 이렇게 하면 냉장고에 있는 식료품을 완전하게 소비할 수 있어 마트에 자주 가지 않아도 된다.

네 번째 소비원칙은 ‘수시로 버리기’다. 안 쓰는 물건을 버리면 소비가 단출해지면서 좁은 집을 더 넓게 쓸 수 있다. 다섯 번째는 ‘여행 가지 않기’다. 여행은 주로 집 근처의 친지들에게 다니는 것으로 해 불필요한 여행은 자제한다. 여섯 번째, ‘집에 대한 욕심 버리기’다. 집 크기를 줄이면 주거비와 관리비가 준다.

책과 DVD는 도서관에서 빌려본다. 컴퓨터를 집에 두지 않고 도서관에서 주1회 한 시간 미친 듯이 본다. 그렇게 하니 하루에 2~6시간씩 컴퓨터를 보던 습관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됐다.
“이런 식으로 사니 사람들이 ‘너무 심심하겠다’, ‘게을러지겠다’라는 말을 하곤 합니다. 하지만 심리학자들은 한가한 시간을 가져야 심리적 안정과 성찰을 갖게 돼 공상을 통해 창의력을 얻게 된다고 말합니다. 세계적인 갑부 워런 버핏과 빌게이츠는 공상하는 스케줄을 통해 기발한 사업아이디어를 얻어냈다고 하고요.”

김 기자는 사표를 낸 지 6년, 미국 시골로 이사 온 지 4년이 됐다. 그 사이 미국 농촌정착 보고서라고 할 수 있는 ‘40세에 은퇴하다’라는 책을 냈다. 김 기자는 ‘미국농부 김선우의 세상 엿보기’라는 칼럼을 통해 가족이 먹을 과일과 채소농사에 이어 판매까지 할 수 있는 농사 확장에 힘쓰고 있다고 한다. 또 ‘8無’ 생활과 소비 줄이기 등 소박한 삶이 녹아든 칼럼에 보내주는 교민의 절찬과 격려가 기쁘다고 말하며 “미국 귀촌에 뜻을 둔 사람에게 좋은 가이드가 되겠습니다.”라고 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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