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소나무화가 김순영 화백

“소나무에는 한국인이 걸어온
 역사와 선비정신 깃들어...
 소나무 그리기는 내 사명”

초등학생때 소질 발견…50년간 화가생활
-화가의 길을 밟게 된 계기는 뭔지요?
“초등학교 1학년 때, 제 그림을 본 선생님이 그림을 잘 그린다는 말씀을 해주시더라고요. 초등학교를 졸업할 때까지 매년 성적표에는 제 미술특기에 대한 선생님의 칭찬 글이 쓰여 있었죠. 이같이 제 미술소질을 발견하면서 화가가 되겠다는 맘을 품게 됐고, 결국 지금의 저를 있게 한 것 같아요.
중·고등학생 땐 사생대회에 나가 대회마다 항상 상을 받아왔어요. 그리고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한 이후엔 대한민국미술대전 특선을 비롯해 17차례나 수상을 했어요. 작품활동 중 학문적인 수련을 위해 예원예술대학원에서 공부를 하기도 했습니다.
지금까지 개인전은 서른두 번, 그 밖에 그룹전과 부스전 등 1년에 20여 차례 출품을 합니다. 누구보다도 왕성한 작품활동을 하고 있다고 자부합니다.”

초기엔 화려한 가을풍경 화폭에 담아
-작품활동 초기엔 주로 어떤 그림을 그리셨나요?
“우리나라는 봄여름가을겨울 사계절이 너무 아름다워요. 그래서 활동 초기 30여 년은 풍경화를 주로 그렸습니다. 양귀비와 모란꽃도 많이 그렸습니다.
특히 저는 가을풍경을 많이 그렸어요. 가을엔 빨강, 노랑, 녹색, 파랑 등 다양한 색상의 풍경을 연출할 수 있어 그림이 화려합니다. 제 작품 속에 담긴 가을풍경의 아름다움과 화려함, 즐거움을 많은 사람들과 공유하고 싶었어요.”

봉곡사 소나무 상처에 상심
아픔 달래려 소나무 그림에 정진

-소나무를 화폭에 담게 된 이유는 뭔지요?
“우리나라의 아름다운 풍경을 많은 사람들에게 보여주고 알려주고 싶어 사시사철 여러 곳을 다닙니다. 날씨가 맑으면 맑은 대로, 눈이 오면 눈이 오는 대로 현장스케치와 사진촬영을 위해 전국을 누비죠. 2000년 초 소나무가 있는 풍경을 그리고 싶어 소나무 숲이 아름다운 충남 아산의 봉곡사를 갔어요. 이 절을 감싸고 있는 ‘천년의 숲’이란 솔밭에 갔었어요. 그런데 소나무껍질이 도끼자국에 찍힌 흉측한 상처가 많더라고요. 일제강점기, 태평양전쟁에 항공기 연료로 사용하기 위해 일제가 우리 조상들을 동원해 소나무에서 송진을 채취했던 상처였죠. 그걸 보고 마음이 안 좋아서 소나무를 그려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그렇게 시작된 소나무 그리기는 어느덧 20여 년이 다돼가고 있어요. 그간 그린 소나무 그림만 해도 600여 점이 됩니다.”

-소나무에 애착을 갖게 된 이유는 뭔지요?
“소나무를 그리면서 한국인이 걸어온 역사와 선비정신이 깃든 나무라고 생각하게 됐습니다. 그리고 소나무의 푸른 기개를 보여 우리 국민의 정서와 심성을 많이 닮았다는 느낌을 받았어요. 그래서 소나무의 매력에 빠져들게 된 것 같아요. 우리 선조들이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인 소나무를 화폭에 자주 담았다는 것도 알게 됐죠. 이 처럼 소나무가 한국인의 모든 정서를 대변하는데 충분한 조건을 가졌기에 소나무를 그리기에 힘써야겠다는 사명을 갖게 된 겁니다.”

추운 겨울·풍파 견딘 설송에 반해
초대형 소나무 그림으로 전시회

-풍경화와 소나무그림 중 어느 그림에 더 애착이 가나요?
“최근 마무리한 ‘세한송설(歲寒松雪)’이라는 소나무 작품이 있어요. 이 작품은 가로 9.2m와 세로 2.7m의 대형작품인데, 눈을 맞은 소나무 그림입니다. 추운 겨울과 모진 풍파 등 모든 어려움을 몇 백 년 견뎌내고 하얀 눈을 덮어쓴 소나무의 아름다움에 반해서 이 그림을 그리게 됐어요.
이 작품에 그려진 소나무는 경북 울진의 대왕송, 강원 영월의 청룡포 관음송, 전남 지리산의 천년송, 제주도 대흥사의 제주곰솔 등입니다. 충북 보은 속리산의 정이품송도 담겨있어요. 서울 남산 둘레길에 힐링숲이 있는데, 이곳에 있는 소나무도 담았어요. 이 소나무들을 우리 주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나무처럼 다정히 서 있는 모습으로 그려놓았어요.

그리고 소나무가 오랜 풍파를 겪어냈듯이 장수의 상징인 학이 하얀 설송(雪松) 위에서 노니는 모습도 함께 그려 넣었어요. 배경엔 북한산이 자리하고 있고요. 북한산 인수봉에서 도봉산 자운봉으로 이어지는 공룡능선을 화실에서 보이는 대로 그려 넣었어요. 눈과 학, 설산 등을 조화롭게 한 폭의 그림에 옮겨놓았죠.
이 작품을 비롯해 제 소나무 그림을 갖고 오는 25~ 30일 조선일보미술관에서 전시회를 갖습니다. 그림을 그리려고 여러 곳의 소나무를 찾아 스케치여행을 다녀야 했습니다. 흰색 위주의 눈도 그려야 했기에 채색에 많은 노력과 시간이 들어갔어요. 이번 전시를 위해 꼬박 3년간의 구상과 1년간의 작업이 소요됐습니다.”

“소나무 매력과 세월의 흔적에서
감동과 희열을 느낄 겁니다”

김순영 화백은 화가로서 작품을 완성한 뒤에 느끼는 감회를 다음과 같이 밝히며 인터뷰를 마무리했다.
”한국인이 좋아하는 소나무에 대한 애착심을 더욱 높이려고 애썼어요. 500~600년 살아온 늙고 거대한 소나무가 수많은 풍상을 겪으면서도 의연한 자태를 뽐내는 생명의 경이로움과 위엄을 표현하고자 했죠. 소나무가 가진 매력과 세월의 흔적을 어떻게 표현을 했을까라는 마음으로 다가가 보면 잔잔한 감동과 희열을 느낄 수 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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