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성장현 용산구청장

기자는 지난 4월9일 서울 백범기념관에서 개최된 성장현 용산구청장의 24여년 지방자치단체장의 활동기록을 담은 ‘밥 얻어벅고 살기가 어디 쉽다냐?’라는 책 발간 출판기념회에 초대됐다. 성 구청장은 민선자치시대 개막 초년도인 1991년 초대 용산구의원 당선에 이어 재선에 성공했다.
1998년에는 서울시 최연소로 용산구청장으로 당선됐으며 2010년 다시 이 자리에 돌아왔다. 이후 내리 3선(選) 전국 시군구 단체장 256명 중 4선 중임 7명 중 1인이 됐다. 2018년에는 전국시장군수 구청장협의회장의 중책을 맡고 있다. 출판기념회에 초대돼 들어본 24년여에 걸친 목민관 활동 경험담을 요약 소개한다.  

 민선 구의원에 이어 구청장 4선
 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장으로 활약 
 풀뿌리 민주주의 실천에 앞장

가난한 농부의 맏이로 태어나
어린 시절 농사일 다 배워

“저는 갈대밭과 정원박람회로 유명한 전남 순천에서 1955년 태어났습니다. 깊은 산골 가난한 농사꾼의 맏이로 태어났으니 눈을 뜨면 잠에 들 때까지 아버지를 도와 농사일을 했습니다. 글공부보다 농사일을 먼저 배웠지요. 풀을 베고, 산에 가서 나무하고 가마니를 짜는 일까지 농사꾼으로서 해야 할 일들을 어린 시절에 다 배웠어요. 주로 아버지와 함께 일을 했는데, 아무리 열심히 해도 아버지는 성에 차지 않았던지 ‘남의 밥 얻어먹고 살기가 어디 그렇게 쉽다냐?’라는 말씀을 자주 하시곤 했어요.”

제대 후 무작정 상경해 용산 정착
16세 때 꿈꾼 정치인의 꿈 이뤄

성 구청장은 군 제대 후 아버지가 늘 말하던 밥벌이를 하고자 무작정 상경해 용산에 새로운 삶의 터전을 잡았다. 다양한 사람을 만났다.
이때 세상에서 가장 큰 서러움이 배고픔이란 걸 절실히 깨달았다고 한다. 생활이 조금은 안정되면서 1978년 용산구 보광동에서 웅변학원을 차렸고 결혼을 해 두 아들을 낳았다. 성 구청장은 두 아들과 함께 용산이 제2의 고향이 됐다.

“제가 처음 정치를 꿈꾼 건 1971년, 내 나이 겨우 열여섯 살 때의 일입니다. 당시 김대중 대통령 후보의 유세현장을 찾아가 그의 애국열변에 매료돼 정치입문에 뜻을 굳혔습니다. 용산으로 와 웅변학원을 차린 것도 정치에 나설 교두보로 삼기 위한 방편이었다고 봐야죠. 이 웅변학원 운영에 힘을 받은 여력으로 1991년 민선자치시대가 개막하자마자 용산구의원에 도전해 당선됐고, 지금까지 지방행정 목민관으로 거의 반평생을 이어오게 됐죠.”

용산은 뉴욕의 맨해튼 같은
단군이래 최대 핫플레이스로 부상

성장현 구청장은 용산이 서울 한복판에 위치해 있고, 또한 미군기지가 들어서 있었던 특수상황을 지녔던 지역이라고 설명했다. 이제는 미군기지가 경기도 평택으로 이전해 서울 도심에 국내 최대의 공원이 개장될 주요 지역이라고도 했다. 그리고 서울역 주변 철도부지에는 뉴욕 맨해튼에 버금가는 세계적인 번화가가 조성될 것이라는 청사진도 공개했다.
“용산구는 단군 이래 최대 개발지역으로 손꼽히는 핫플레이스이자 21세기 다문화를 대표하는 랜드마크가 수두룩한 지역으로 문화포용시책을 선도해야 하는 지역입니다. 지금은 무산됐지만 한때는 서울시청이 용산으로 이전할 계획이었고, 최근에는 청와대를 용산으로 옮겨야 한다는 소리도 심심찮게 듣고 있습니다.”

한편, 용산엔 조선 제22대 정조대왕의 장자로 태어나 세자에 책봉됐으나 홍역으로 5세 어린나이에 생을 마감한 문효세자의 무덤이 있는 효창공원이 있다. 그리고 일제시대 독립운동을 이끈 백범 김구선생의 기념관이 있다. 남이장군의 사당을 비롯해 새남터 순교성지 등 많은 유적지를 가진 지역이다.
성 구청장은 선출직 지방행정의 책임자로서 일상의 고단함에 지친 주민을 보듬고 비전과 희망을 심어줘야 하는 역할을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요정책에 따라 행정조직을 움직여 지역주민의 생활과 직결된 공공서비스를 차질 없이 제공하는 섬세한 역할을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구민의 복잡 미묘하고 다양한 행정민원을 제한된 예산으로 책임 있게 이끌어 나가야 하는 고충도 토로했다.

세종대왕의 위민정신으로 구정 최선
구민을 돌보기 위한 시정(施政) 철학이 뭔지 그에게 물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임금의 하늘은 백성이고 백성의 하늘은 밥이다’란 세종대왕의 말씀이 많이 등장합니다. 흉년을 걱정하며 신하들에게 ‘백성의 하늘’을 챙기라면서 백성이 배부르고 등 따뜻한 태평성대를 만들라는 세종대왕의 가르침을 받들어 구민을 돌보고자 많은 애를 쓰고 있습니다. ‘벼슬을 희망해 얻어도 좋으나 목민관직을 구해 얻어서는 안 된다’는 다산 정약용 선생의 깨우침을 받들어 ‘밥값은 하고 살자’는 말로 구청공무원들을 독려하고 있습니다.”

재임 중 교육분야 투자에 집중
성 구청장은 구민의 성원으로 네 차례나 구청장에 당선됐다. 이 기간 중 그가 공들여 정성스레 이룬 일을 다음과 같이 소개했다.
“구청장으로 재임 중 교육투자에 가장 크게 집중해왔습니다. 고교연합, 공교육 특화프로그램, 숙명여대와의 공교육 살리기 공조, 장학기금 100억 원 조성, 저소득청소년 대상 무료사교육 지원, 대학수시전형 상담, 꿈나무종합타운 조성, 16개 구립도서관 지원 활성화 등 교육특화 지원에 힘썼지요.

그리고 용산에는 65세 이상 어르신이 전국 평균 14.2%보다 많은 16%인 것에 착안해 서울에서 유일하게 병상 80개 이상의 요양원 2곳을 운영하고 있습니다. 또 네덜란드 호그백 마을을 벤치마킹해 2022년까지 강원도 양구에 구민휴양소와 전국 최초의 치매안심마을을 조성 중에 있어요. 나아가 남산에서 용산공원을 거쳐 한강에 이르는 남북 녹지축을 만들기 위해 용산 미군기지 내에 있던 역사적 가치가 있는 문화재를 보전하는 생태공원을 최대한 넓혀 후손에게 온전하게 물려주려고 합니다.”

한편, 성장현 구청장은 바쁘고 어려운 구정 수행 중에도 단국대학교에서 ‘한미주둔군 지위협정의 문제점과 개선방향’을 주제로 박사학위를 취득하는 열정을 보였다. 그는 전국시장군수구청장협의회 회장으로서 풀뿌리 민주주의가 바른 길로 갈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
성 구청장은 오늘도 아버지의 말씀에 따라 밥값을 다하고자 매일 아침 6시 집을 나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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