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국내최초‘기차역 이야기꾼’박석민 역장

1899년 노량진과 제물포간 기차가 운행되면서 우리나라에 교통혁명이 일어났다. 기차 운행이 시작되면서 ‘우렁차게 토하는 기적소리에 남대문을 등지고 떠나 나가서 빨리 부는 바람의 형세 같으니 날개 가진 새라도 못 따르겠네~’라는 창가가 생길 정도로 사람들은 기차의 등장에 경악을 금치 못했다.
우리나라 철도는 개통 119년을 맞아 발전에 발전을 거쳐 하루에 승객 350만 명을 실어 나르며 전국을 반나절 생활권으로 연결하는 육상교통의 최강자로 떠올랐다.
그동안 국민의 발이 돼 쉼 없이 달려온 낭만이 깃든 철도이야기를 국내 최초 ‘기차역 이야기꾼’(트레인텔러:Train Teller)인 박석민 역장을 만나 들어본다.

 

단풍이 물드는 이 가을에
 낭만이 깃든 열차여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드세요~

1899년 경인선 개통 후
93개 노선 3800㎞ 철도 완성
장거리 운송 57% 차지하는 혈맥

“강의를 하면서 가끔 기차와 관련된 넌센스퀴즈를 내곤 합니다. ‘기차를 왜 기차라 하는지 아세요?’ 물으면 대부분 ‘길어서 기차’라고 대답할 때 ‘정답이 아닙니다’라고 하면 깜짝 놀랍니다. ‘제가 기똥차게 잘 달려서 기차입니다’라고 하면 다들 ‘우우~’ 하면서 웃습니다. 이렇듯 기차는 ‘원숭이 엉덩이는 빨개’로 시작하는 끝말잇기에서 긴 것의 대명사로 쓰일 정도로 단연코 육상교통의 왕자입니다.”
박 역장은 철도를 18세기에 유럽에서 시작한 산업혁명의 견인차라고 설명했다. 우리나라에는 1899년에 처음으로 경인선이 개통됐고, 1905년 경부선에 이어 경의선, 호남선, 경원선, 중앙선, 전라선, 경전선 등이 개통됐다고 말했다. 그리고 2004년 고속철도가 건설되면서 오늘날에는 95개 노선 3800㎞의 철로가 완성돼 장거리 운송의 57%를 차지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낭만․추억 깃든 기차역은 행복발전소
“행복은 기차를 타고 옵니다”

“사람들마다 기차에 얽힌 에피소드 한 두 개쯤은 간직하고 있을 겁니다. 어릴 적 철로에 철사를 놓아 납작하게 만들던 개구쟁이 짓, 엄마손 잡고 외갓집 갈 때 타던 기차, 기차로 통학하며 몰래 좋아하던 여학생을 훔쳐보던 일, 어렵던 시절에 몰래 도둑기차를 탔던 추억, 명절에 기차로 고향 가던 설렘은 잊어버릴 수 없는 기억입니다.
기차가 서는 역은 행복발전소입니다. 역(驛)이란 말 마(馬), 그물 망(網), 행복 행(幸)으로 나눌 수 있는데 ‘그물망처럼 짜여진 길로 말(지금의 기차)을 타고 와서 만나 행복해진다’라는 놀라운 뜻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35년 철길인생을 ‘행복은 기차를 타고 온다’는 모토로 살아왔고 그동안 역에 관련된 이야기를 모아서 ‘기차에서 핀 수채화’라는 책을 펴냈습니다.”

아날로그시대의 박물관 ‘간이역’
이야기로 잘 꾸며 지역관광 명소로~

박 역장은 전남 무안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에서 태어났다. 그가 중학생이던 1970년대 당시에도 고향마을 무안은 전국에서 최고로 유명한 양파와 담배농사의 주산지였다.
“학교에서 돌아온 후 즉시 논밭으로 나가 일을 해도 사는 것이 어려웠습니다. 도시지역의 인문계 고등학교에 다닐 형편이 되지 않아 국비학교인 철도고등학교를 가면서 철길인생을 시작하게 된 거죠. 졸업 후 철도청에 임용되면 손수 벌어 야간대학에 다니고, 기필코 고시에 합격해 집안을 일으키겠다는 신념으로 공부했지만 첫 발령지가 생면부지의 강원도 영월이었습니다. 그때부터 역마살이 끼어 전국의 기차역을 다니게 됐는데 충북 제천, 경북 영주, 강원도 동해를 거쳐 2001년에는 전국 최고의 해돋이 명소인 정동진역장을 하면서 기차관광에 대한 연구를 시작했습니다.”

박 역장은 철도공무원이 된 지 20년이 넘어서야 꿈에 그리던 고향에 올 수가 있었고 목포역장, 나주역장을 지내며 남도관광을 활성화시켰고, 지역발전의 계기를 만들어 주고자 여러 신문에 철도 관련 칼럼을 싣기도 했다.
“급격한 산업화로 이촌향도 현상이 벌어지면서 이용객이 줄어든 간이역은 농촌정거장이 되고 말았죠. 번성했던 마을들이 쇠락하면서 역무원이 철수하고 기차운행도 줄어들어 사람들의 관심이 멀어지는 것을 안타깝게 생각해 기차에 관한 관심을 다시 되돌리고자 간이역 알리기를 시작했습니다.

그동안 발굴한 기차역별 테마를 보면 ‘작은 소쇄원, 남평역을 아시나요?’ ‘삿갓손 멋진 화순역’, ‘봉황소리 구성진 명봉역’, ‘곡식으로 가득찬 원창역’, ‘사모곡이 그리운 학다리역’ 등이 있습니다. 이 역들은 기차여행객의 낭만과 추억이 깃든 역입니다.
간이역은 아날로그시대의 박물관입니다. 바쁘게 돌아가는 시대에도 추억과 낭만을 찾는 관광은 계속될 것입니다. 역사가 깃든 경전선 간이역을 잘 꾸민다면 지역관광의 명소가 될 겁니다. 그래서 저는 경전선이 지나는 광주, 나주, 화순, 보성, 순천시에 관광협의체를 구성해 경전선 철도 관광개발에 힘쓸 생각입니다.”

스위스․일본처럼 테마열차 도입해
지역농산물 판매촉진․관광 활성화 이룰터

박 역장은 스위스의 산악열차나 일본 규슈의 이색열차 성공사례를 경전선인 광주~순천간에 도입하고픈 포부를 밝혔다. 이곳에 철도 관광객을 유치해 지역농산물 판매 촉진과 관광을 통한 지역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것이다.
현재 코레일은 레일그린열차, 과일열차, 5일장열차 등 다양한 테마열차를 운행하고 있는데, 이를 통해 지역농산물 판매와 관광객 모으기로 농촌지역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특히 전국에 5대 철도관광벨트를 조성해 인기리에 관광열차를 운영하고 있다.

“저는 첫 근무지인 태백선 연당역에서부터 시작해 여러 간이역에서 근무할 당시의 재미난 이야기를 글로 쓰고 들려주는 국내 최초의 ‘기차역 이야기꾼’(Rail Teller)이 됐습니다. 지난 8월에는 간이역 이야기를 담은 글에 그림을 공부하는 딸이 수채화를 그려 넣은 ‘기차에서 핀 수채화’란 책을 펴냈습니다. 앞으로도 기차 이야기꾼으로서 사명감을 갖고 제가 근무했던 경전선, 전라선, 중앙선, 영동선 노선에 깃든 흥미진진한 이야기를 계속 정리·발굴해 글로 쓰겠습니다.
국민 여러분들도 자동차 관광보다 안전하고 여유와 낭만이 깃든 열차를 이용해 단풍이 물드는 가을에 가족여행으로 좋은 추억을 만들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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