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터뷰 - 한국학연구소 신광철 소장

한옥마을을 보노라면 신비롭고 고색창연한 과거가 그려진다. 가을날 한옥 담장 위를 타고 앉은 호박이 햇살을 마주하는 모습을 보면 푸근한 결실의 정감을 느낀다.
늦은 가을 석양녘 한옥추녀에 매달린 풍경의 종소리를 듣노라면 애잔한 감상에 젖는다.
한국인의 심성과 한국문화에 심취해 한옥 연구에 매진하며 시를 쓰고 있는 한국학연구소 신광철 소장을 만나 한옥의 특징과 멋에 대해 들어봤다.

한옥이 각광받는 이유는
 한국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적감각이 뛰어난
 외국인들을 매료시켰기 때문

온돌·마루를 한 공간에 끌어들여
조화롭게 이용하는 건축물

신 소장은 잊혀져가는 한옥 사랑을 일깨우기 위해 그간 ‘한옥마을’, ‘소형한옥’, ‘한옥설계집’, ‘한옥의 멋’ 등 한옥관련 책을 여럿 펴냈다. 그는 먼저 한옥이 지닌 멋에 대해 이야기를 풀어놨다.
“한옥은 주변의 산과 들과 강, 더 나아가 마을과 절묘하게 절충돼 주변을 받아들이는 넉넉함을 지닌 집입니다. 다가가면 너그럽고, 살다보면 자유롭지요. 우리에겐 그리움이 듬뿍 담긴 집이고, 고향의 품과 같은 아늑한 집입니다. 한옥의 속내를 가만히 들여다보면 매력이 한두 가지가 아닙니다.

한 걸음 한 걸음 한옥에 다가갈 때마다 달라지는 풍경하며, 문얼굴에 가득 찬 풍경의 아름다움, 이래서 한옥이 위대한 집이고 아름답구나 하고 깨닫게 됩니다.”
세계 어느 나라에도 없는 온돌과 마루를 하나의 공간에 끌어들여 조화롭게 이용하는 건축물이 한옥이라고 신 소장은 말한다.

온돌은 인류 최고의 난방방식
독일·덴마크 등도 온돌방식 도입

“한옥의 온돌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난방방식입니다. 한옥은 유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밝은 집이었지요. 창호 들창으로 해와 달의 자연변화를 자연스레 바라볼 수 있는 멋진 집이기도 하죠. 한옥이 각광을 받는 것은 한국인에 의해서가 아니라 미적세계의 눈이 밝은 외국인들에 의해서였습니다. 한옥의 구조와 한옥에 담긴 정서에 세계인이 매료된 것입니다.”

한옥의 특징에 대해 알아봤다.
“한옥의 가장 큰 특징은 두 개의 문화를 한 공간에서 구현해 내고 있다는 점입니다. 남방문화인 마루와 북방문화인 온돌이 하나의 건축물에서 만난 희귀한 구조입니다. 한옥은 인문학적으로나 문화사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집입니다. 마루는 열대지방처럼 띄어 지어 더위와 짐승으로부터 안전을 지켜줍니다. 그리고 마루 밑 하부공간은 습기를 차단해 생활하기가 쾌적한 남방문화의 대표적 건축형태입니다. 

온돌은 북방문화의 산물로 한·중·일 등을 중심으로 사용되고 있는데, 중국과 일본은 공간의 일부에만 구들을 놓는 쪽구들입니다. 우리는 구들을 방 전체에 깔아 불기운이 전체로 퍼지도록 하는 난방장치입니다. 미국의 저명 건축가인 프랭크 로이드 라이트는 ‘한국의 온돌은 인류가 발명한 최고의 난방방식’이라고 극찬하기도 했습니다.”
이어 신 소장은 한국의 온돌이 세계의 난방문화 변화를 이끌고 있다고 말했다.
“공기를 데우는 대류난방방식을 사용하는 독일, 덴마크, 스위스 등 유럽국가들은 온돌과 같은 축열식바닥난방을 도입하고 있습니다. 한옥은 어둡고 춥다는 고정관념이 있는데, 이는 잘못된 생각입니다.”

등 따시고 배부르면 정승․판서
부러울 게 없는 한옥 생활

중국의 자금성이나 프랑스의 베르사유궁전도 한국과 같이 춥고 어둡고 불편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한옥은 유리가 발명되기 전까진 세계에서 가장 밝은 집이었다. 다른 나라는 우리와 같은 창호지가 없어 나무판자나 거적같은 것을 창에 달아 낮에도 어두웠다.
그리고 한옥은 보일러가 발명되기 전까지는 세계에서 가장 따뜻한 건물이었다. 아궁이불로 아침·저녁에 밥을 짓고, 데워진 온돌의 축열로 오랫동안 방을 따뜻하게 한다. 옥스퍼드사전에 온돌은 영어로 ‘ondol’로 기재돼 한국식 난방시스템으로 소개되고 있다. 온돌방식이 세계문화특권을 누리고 있는 셈이다.
조선왕조실록에 따르면 태종 17년인 1417년, 성균관 유생들 중 중병을 앓던 이들을 위해 온돌방을 만들어 치유공간으로 이용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래서 ‘등 따시고 배부르면 정승·판서 부러울 게 없다’는 속담이 생긴 것 같다고 말했다.

한옥은 자연을 존중해 기둥목도
자란 그대로 위·아래 찾아 세워

신 소장은 한옥 짓기에 대해 얘기를 들려줬다.
“한옥은 2층이 없습니다. 예외적으로 궁궐이나 사찰에서 고층건물을 볼 수 있으나 한옥만은 단층으로 평면성을 기반으로 해 짓습니다. 한국인은 땅의 기운(地氣)를 중히 여깁니다. 2층은 지기를 받을 수 없다는 점에서 단층을 선호했지요.”
한옥은 장인의 기예가 깃든 철저하게 계산된 역학과 완벽한 설계의 의해 완성되는 집이라고 신 소장은 강조한다.

한국인은 잘 지은 건물에 자연을 그대로 들여놓는다고 했다. 이에 기둥을 세울 때는 나무가 자란대로 위와 아래를 그대로 찾아서 세운다고. 나무가 자란 방향도 그대로 살려 짓는다. 이를 어기면 나무가 뒤틀어지게 된다.
구례 화엄사의 기둥목인 도랑주는 500년 된 모과나무를 사용했는데, 하나는 나무가 자라던 모습 그대로, 또 하나는 거꾸로 기둥을 세워 자연미를 한껏 살렸다. 한옥은 기둥을 놓을 자리에 돌을 받친다. 이 돌은 주초석이라 하는데, 기둥이 물에 젖어 썩는 것을 방지하기 위함이다.

한옥 마당은 동양화의 여백같은 공간…
농사․의례․축제 등의 공간으로 이용

“한옥의 마당은 빈 공간이 아니라 동양화의 여백과도 같이 중히 여기는 공간입니다. 한옥건물 다음으로 위엄을 내세우는 솟을대문을 거쳐 들어선 마당은 온갖 잔치와 장례가 이뤄지는 의례공간이죠.”
봄에는 농사준비의 공간이고, 가을이면 콩·깨 털기와 고추를 말리는 추수의 공간이기도 하다고. 여름밤에는 마당에 멍석을 깔고 가족이 모여 감자를 삶아먹으며 두런두런 정을 나누는 자리이며, 때로는 사물놀이패를 들여 춤과 노래가 펼쳐지는 축제공간이 되기도 한다.

마당에는 지붕높이를 넘게 자라는 나무는 심지 않는다. 그늘지는 것을 막기 위함이고 한옥 안팎 풍경을 보기 위함이다.
“한옥은 풍수과학에 근거해 바람을 감추고 물을 얻는 ‘장풍득수(藏風得水)’와 산도 물도 끌어들이는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터전에 지어야 복을 받습니다.”
뜨끈한 온돌 아랫목 이불섶에 묻어뒀던 밥에 맛난 찬을 올린 밥상을 내준 어머니와 우리집 한옥이 마냥 그리운 인터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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