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옛날엔 신랑 신부가 서로 얼굴도 모르는 채 혼인을 하는 게 다반사였다. 그도 그럴 것이 혼인은 집안간에 인연을 맺는 대사여서 집안 어른간에 일찌감치 사돈(査頓)의 인연을 맺기로 약속해 두었다가 그 자식들을 짝지우기 때문이었다. 당사자들이 서로 눈 맞아 결혼하는 건 꿈에도 생각지 못할 시절이었다.

설혹 매파(媒婆, 중매쟁이)가 두 집안을 부리나케 오가며 혼인을 성사시켜도 얼굴 못보기는 매한가지였다. 활동사진이 없던 시절이었으니 다만 매파가 얘기해 주는 말만 듣고 막연하게 배우자가 될 상대방 모습을 머릿속으로만 이리저리 그려볼 따름이었다.

혼인이 결정이 되면 신랑집에서 신부집으로 사주단자(四柱單子, 종이에 신랑의 사주를 적어 보내는 것)와 푸른 비단과 붉은 비단이 든 폐백을 보내는 납폐(納幣)절차가 진행된다. 그리고 혼인날을 정한다.
혼례식은 신부집에 차려놓은 초례청(醮禮廳)에서 거행된다. 혼례식을 치르기 위해 먼저 신랑이 신부집으로 가는데, 이것을 신행(新行) 또는 혼행(婚行)이라고 한다. 그래서 ‘장가 간다’는 말도 나왔다.
전통혼례는 초례청을 차려놓고 가족은 물론 집안 친척, 동네사람들까지 모두 모여 왁자하게 진행된다. 신랑은 푸른색의 문관 조복(朝服)인 사모관대(紗帽冠帶) 차림이고, 신부는연두빛 길 바탕에 자주깃을 달고 색동을 달아 지은 원삼(圓杉)을 입고 양볼과 이마에 연지와 곤지를 찍어 바른 다음 족두리를 쓴다.

생전가야 벼슬 한 자리 못할 위인이지만 이날 하루 만큼은 벼슬아치 옷을 입혀 지체있는 양반 대접을 해 주는 것이다. 청맥죽에 보리밥으로 어렵게 끼니를 잇다가도 생일날 만큼은 기름이 잘잘 흐르는 쌀밥에 고깃국을 끓여주는 것처럼.
물론 초례를 마치면 신부집에서 첫날밤을 치른다. 그렇게 사흘을 묵고 신랑이 신부를 데리고 신랑집으로 가는데, 흔히 ‘신랑 매달아 놓고 길들이기’ 통과의례는 혼인한 뒤 신랑이 처음으로 처가에 가는 재행(再行)때 행한다.

이런 전통혼례가 허례허식이 크다 하여 개발시대에 된서리를 맞기는 했으나, 간간 약식으로나마 면면히 이어져 오고는 있어 사라져 가는 우리 옛 전통문화의 멋과 맛을 되새겨볼 수 있어 좋다.
그런데 최근 톱스타 원빈과 이나영이 원빈의 고향인 강원도 정선의 한 시골 밀밭에서 주례, 축가도 없이 일가친척 40여명만 단출하게 초대한 가운데 영화의 한 장면같은 작은 결혼식을 올렸대서 화제다. 초대된 하객들에겐 커다란 가마솥에서 끓여낸 잔치국수와 전, 부침개를 대접했다니, 그런 뉴스를 접하는 마음이 왜 이렇게 따뜻해지는 걸까. 그러고 보면 못살겠거니 해도 그런대로 세상은 살만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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