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고향의 봄은 흙냄새로부터 왔다. 사방천지가 갯논 뻘인데다 따비밭이 나 부쳐먹을 야트막한 황토야산 등성이가 마을 앞자락을 둘러치고 있는 민숭민숭한 자연부락이었던지라 들바람에 실려오는 건 겨우내 얼어붙어 있다 몸을 푼 논밭의 알싸한 흙내음이었다.

농사철이 나설 무렵부터는 그 냄새는 쿰쿰한 인분(人糞)냄새로 바뀌어 갔다. 너나 없이 인분이며 재를 밭작물의 천연거름으로 이용할 때였으니, 재래식 화장실에 익숙해진 시골아이들에게 그 냄새는 무쇠솥에 뜸들이는 밥냄새 만큼이나 코에 익은 냄새였다.
꽃은 아직 멀었다. 학교 음악시간에 풍금소리에 맞춰 ‘복숭아꽃 살구꽃 아기진달래… 울긋불긋 꽃대궐 차리인 동네♪♩’ 목이 터져라 입모아 부르던 ‘고향의 봄’과는 영판 다른 고향의 봄이었다. 앞냇가 버들강아지야 어디 꽃인가.

이른 봄 이때, 나무에서 피는 꽃이라야 집 뒤 울안에 살구나무며 감나무 한 그루씩 가진 집 서너 집이 고작이니 꽃은 아직 일렀고, 양철지붕을 인 윗뜸 이장집 개나리나무 담장에 피어난 샛노란 개나리 꽃 무더기와 그 위 서울집 마당가에 하얗게 핀 어린아이 머리통만한 목련꽃이 다였다. 물론 그것이 목련꽃이라는 건 한참 뒤에나 알았다.

그외엔 학교 가는 길 언저리 공동묘지 등성이 복숭아밭에 연분홍 복사꽃이 피고, 읍내 양복쟁이네 작은 과수원에 하얀 배꽃이 핀 것을 아무 감흥도 없이 흘낏흘낏 보는 게 다였다. 아이들에게 나무에서 피는 꽃의 절정은 용머리처럼 생긴 마을 앞 도장산에서 피는 아카시꽃이었다. 5월이 되면 정말 하얀 옥수수 튀김처럼 생긴 아카시꽃이 바람이 불 때마다 눈송이처럼 날렸다. 이렇다 할 먹을거리가 없어 궁궁해 하던 촌 아이들에게 달콤한 꿀샘을 가진 아카시꽃은 그야말로 하늘이 내려준 귀한 꽃과자였다. 아이들은 한움큼씩 꽃을 따서 호주머니에 집어넣고는 볼이 미어져라고 허기진 배를 채웠다. 그 아카시꽃도 이른 봄 이때는 아직이다.

집을 나서 오리 너머 학교 가는 장뚝 큰길가엔 새초롬하게 샛노란 안질뱅이 서양민들레가 가는 목을 내밀고 하늘 거린다. 6·25때 전쟁 피난민들이 내려와 토담집을 짓고 살고 있던 장단부락 뒤켠 야산 양지바른 등성이엔 뜸성뜸성 들킬세라 키작은 종모양의 진홍빛 할미꽃이 하얀 솜털을 뒤짚어 쓴 채 고개 숙여 피어나고, 여기저기 막 피어난 연보랏빛 제비꽃이 파르르 작은 몸을 떤다. 들길 따라 줄지어선 밭이랑에선 청보리며 마늘, 파 잎이 두어 뼘 길이로 자라 가슴가득 일렁이는 초록빛 바다를 꿈꾸게 하던 곳… 그 고향의 봄이 지금은 온데 간데 없다. 아파트며 미군기지 건설공사 기계소리로 하루 해가 뜨고 하루 해가 진다. 1960, 고향의 봄을 난 이따금 꿈속에서나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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