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싱가포르 건국의 아버지’로 전국민의 추앙을 받아온 리콴유 전 수상이 지난 3월29일 온 세계인들의 애도 속에 향년 91세로 영면(永眠)에 들었다. 장례방식도 대부분의 세계 지도자들이 동산만한 묘역을 만들어 안장되거나 방부처리해 미라로 안치되는 것과 달리 16년 전 먼저 세상을 떠난 그의 반려자 콰걱추 여사처럼 화장돼 한 줌 재로 돌아갔다.

싱가포르에서 태어나 영국 케임브리지대 법학과를 졸업한 후 변호사 자격증을 가지고 고국으로 돌아온 리콴유는 1959년 영연방 싱가포르 자치령의 초대 총리로 취임한 이후 31년간 총리로 재직했다. 취임초기 말레이시아와 영연방으로부터 버려지다시피한 불과 서울의 1.18배 크기에 1인당 국민소득 4백달러인 가난한 어촌을 국민 1인당 GDP 5만6천달러라는 세계 8위의 강소(强小) 도시국가로 만든 성장의 초석을 다졌다.

강력한 실용주의 추구와 권위주의적 통치 때문에 ‘개발독재’라는 비판을 혹독하게 받으면서도 ‘아시아의 네마리 용(龍)’이라는 경제신화와 함께 한국의 박정희, 필리핀의 마르코스,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 대통령과 함께 당대 ‘아시아의 4독재자’로 불리기도 했다.
그러나 그는 아랑곳 하지 않고 단호하게 말했다. “사람들에게 원하는 게 무엇인지 물어봐라. 표현의 자유? 아니다. 집, 의료품, 직업, 학교다!”

그러면서 거리에서 껌만 뱉어도 심하면 태형(笞刑)을 받을 수 있는 나라, 마약을 0.5g이상 소지해도 사형 당할 수 있는 나라라는 가혹한 법치(法治)와 비리·부패 척결의지를 실천해 싱가포르를 세계 제1위 청정국으로 만들었다.
리콴유가 단기간 내에 싱가포르를 세계적인 금융·물류 중심의 부자나라로 급성장 시키면서 생겨난 것이 ‘5C’라는 성공기준이다. 즉 5C란‘Cash(현금)’ ‘Car(승용차)’ ‘Condominium(개인아파트)’ ‘Credit card(신용카드)’ ‘Country club(교외 레저시설)’의 머릿글자를 딴 것이다.

현금이야 세계 어느 나라에서건 많으면 많을수록 성공의 척도로 얘기될 수 있는 것이고, 나머지 네개의 ‘C’는 싱가포르만의 독특한 규제정책 때문에 이것들을 가지면 “사회적으로 성공했다”며 대우를 받는다는 것이다.
차는 구입할 때 최대 191%의 세금이 붙고 ‘차량소유 허가증’을 경매를 통해 발급받아야 하기 때문에 차량 소유자는 국민 10명당 1명에 불과하다. 콘도, 신용카드, 컨트리클럽 모두 부의 격차에 따라 경제적 상위층만이 소유가 가능하다.

그러나 여기에서 중요한 건, 그것을 소유하지 못하고 있더라도 불행하다고 느끼는 국민이 그 누구도 없다는 사실이다. 리콴유 같은 지도자를 그리워 하는 가장 큰 이유다. 아, 우리는 왜 그런 지도자를 가질 수 없는 것일까.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