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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램핑(glamping)
박광희 기자  |  history814@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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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5.03.27  11:15: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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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0~70년대에 중·고등학교 학창시절을 보낸 이들에게 가장 기억에 남는 추억거리의 하나가 ‘캠핑’일 것이다. 여름방학이 시작되기가 무섭게 방학 전 짬짬이 꾸려놓은 배낭을 들쳐메고 쌩하니 바람처럼 집을 나서던 그 가슴 설레던 기억들을 어찌 쉬 잊을 수 있으랴. 송도, 천리포, 만리포, 해운대, 경포대 해수욕장은 그렇게 겁없이 집을 나선 젊은 청춘들로 밤에도 쉬 잠들지 못했다.

변변한 수영복 한 장 없어도 하얀 포말을 베어 문 여름바다는 그 어슬프고도 촌스럽기까지 한 젊음들을 너른 가슴으로 품어 안아줬다.

무더기 무더기로 바닷가 모래사장에 텐트를 치고 둘러앉아 치카치카 유압식 석유버너로 선 밥을 지어먹고는 기타 반주에 맞춰 ‘조개껍질 묶어 그녀의 목에 걸고/ 냇가에 마주앉아 밤새 속삭이네~♩♪’ ‘저 별은 나의 별 저 별은 너의 별/ 아침이슬 내릴 때까지~♪’ 등의 포크송을 목이 쉬도록 불러제끼는가 하면, 한켠에서는 야전(野電, 밧데리로 작동하는 휴대용 야외 전축)에 국내 그룹사운드의 ‘해변으로 가요~’ 판이나 샹하이 트위스트며 울리불리 레코드판을 얹어놓고는 서로 뒤엉켜 입에서 단내가 나도록 몸을 흔들어댔다. 여름 밤 바다 모래사장은 그렇게 젊은이들의 광기(狂氣)로 밤새도록 몸살을 앓았다.

그런가 하면 어떤 이들은 연인과 함께 비교적 피서객이 적은 유명산 계곡을 찾아 맑은 계곡물에 발을 담그고 더위를 식혔다. 그때야 지금과는 달리 산중 계곡이건 바닷가 모래사장이건 간에 불을 피워 취사를 할 수 있었으니, 당시의 캠핑은 최소의 비용으로 젊음과 여름밤의 낭만을 만끽하던 ‘한뎃잠 자던 들살이’였던 셈이다.

무전여행(無錢旅行)이란 것도 있었는데, 말 그대로 돈 없이 배낭여행을 하며 먹을거리와 잠자리를 해결하는 것으로 여간한 배포와 뻔뻔함이 없이는 불가능 했던 ‘서바이벌 여행’이었다.

요즘 난데 없는 강화도의 글램핑(glamping) 화재사건으로 나라 안이 벌집 쑤셔놓은 것처럼 어수선하다. 글램핑이란 글래머러스(glamorous, 화려하다는 뜻)란 말과 야영을 뜻하는 캠핑(camping)을 합쳐서 부르는 말이다. 글램핑은 우리보다 사는 게 몇 갑절 나은  유럽에서 2000년대에 시작된 여행의 한 형태다.

흡사 파오나 인디언 주거지와 같은 텐트 안에는 취사도구며, 난방기, 심지어는 침대, 화장실, 식탁, 전기장판까지 장비·먹거리·연료가 모두 갖추어진 가족 야영시설인데, 이를 일러 ‘귀족야영’(貴族野營)이란단다. 흡사 ‘야외에 옮겨놓은 원룸’이라면 딱이지 싶다. ‘아웃도어(out-door)’붐을 타고 펜션이 우후죽순격으로 보급되면서 생겨난 여행트렌드라지만, 겉멋만을 탐닉하는 것 같아 딱해 보인다. 럭셔리도 좋지만, ‘너희가 여행의 참맛을 알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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