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0여년 전의 일이다. 서울 동대문 밖 용두동이란 동네의 단독 슬라브주택 3층에 살 때였다. 음력 설을 갓 지난 무렵의 주말 오후였는데, 그날따라 따사로운 햇살이 북쪽으로 난 커다란 유리창으로 가득 쏟아져 들어와 나른한 오수(午睡)에 시름시름 빠져들 때였다.

순간 탁-하고 무엇인가가 유리창에 세게 부딪히는 소리가 나 정신이 번쩍 들었다. 유리창을 보니 멀쩡했다. 도대체 뭐가 부딪힌 것인지 알 수가 없었다. 돌멩이 같은 거였으면 쨍그랑 하며 유리창이 박살이 났을 터인데…. 후다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거실 문을 열고 창문이 있는 바깥 베란다를 살펴보았다. 그때 베란다 창밑에 가지런히 놓여 있는 키 작은 오지 장항아리 사이에서 무엇인가가 퍼득거리고 있었다. 조심조심 허리를 굽히고 다가가 살펴보니 이게 웬일, 암꿩인 까투리 한 마리가 겁 먹은 눈을 멀뚱멀뚱 뜨고 주둥이를 벌린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유리창에 부딪힌 장본인이 바로 요놈이었다. 놈은 아직도 충돌의 충격에서 쉬 헤어나지 못하는 듯 싶었다. 이놈을 움켜잡을 요량으로 살금살금 다가가자 몇발짝 비틀대며 폴짝거리더니 이내 푸드득 날아가 버렸다.
 

필시 커다란 유리창에 반사된 파란 하늘을 보고 날아들다 유리창이란 뜻밖의 장애물에 머리를 부딪혀 순간적으로 정신을 잃었던 게 분명했다. 도대체 놈은 어쩌다 도심지 주택가에 날아들어 그와같은 변을 당한 것일까, 행여 뇌진탕을 일으키지는 않았을까… 놈을 잡지 못한 아쉬움도 잠시, 그런저런 놈에 대한 궁금증이 오래도록 여운으로 남았다.
최근 영국의 경제주간지 이코노미스트가 3월8일 ‘세계 여성의 날’을 앞두고 여성의 고위직 진출 등을 막는 사회적 장벽을 뜻하는 ‘유리 천장(glass ceiling)’ 지수를 점수로 매겨 평가한 결과에서 한국이 3년 연속 평가대상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28개국 가운데 28위 꼴찌를 기록했다. 100점 만점에 25.6점으로 가부장제 전통이 심한 터키보다도 낮은 점수를 받았고, 이웃 일본은 27위, 1위는 핀란드로 80점, OECD 평균은 60점이었다.

이코노미스트는 고등교육을 받은 남녀 비율, 여성의 경제활동 참여도, 남녀 임금 격차 등 9개 항목을 기준으로 유리천장 지수를 평가해 해마다 발표하고 있다. 창피하게도 우리의 현실이 그러하니 할 말을 잊게 만든다. 유리로 된 천장처럼 눈에 보이지는 않는 장벽이 아니라 아예 콘크리트 장벽이라고 해야 옳지 싶다. 정부 17개 부처 장관 가운데 여성장관은 여성가족부장관 단 한명 뿐이고, 우리나라 기업의 여성임원 비율은 고작 1.9%다.

지금 이 순간에도 유리창에 부딪혀 혼절한 까투리처럼 숱한 이땅의 여성들이 유리천장에 부딪혀 깊은 좌절의 늪에 빠져있다. 그게 여성이 대통령으로 있는 우리의 불행한 현주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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