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올해는 새해 벽두에 ‘청마(靑馬)의 기상’이 어떻느니 하며 부산스레 떠들어댄 것과는 아랑곳 없이 4월의 세월호 참사로 국민 모두가 가슴 아픈 세월을 보냈다. 아직도 가족의 품으로 돌아오지 못한 9명의 영령들이 차디찬 남해의 겨울바다 속을 떠돌고 있다.
세월호 참사는 오랫동안 쌓여 굳어져 있는 우리사회의 잘못된 관행과 부패상을 총체적으로 보여준 사건으로 이로인해 ‘관피아(관료+마피아)’란 말이 생겨났다. 이 말은 공무원들이 자신들의 기득권을 보호하기 위해 흡사 범죄조직처럼 거대한 세력을 구축했다는 것을 비꼰 것이다. 이후 ‘법피아’ ‘군피아’ 등 각 분야의 머릿글자를 붙인 ‘○피아’가 유행어처럼 언론에 떠다녔다.

또한 빈익빈 부익부로 우리사회의 양극화가 심화되면서 소위 갑을(甲乙) 관계에서 발생하는 문제를 잘 표현한 신조어들도 생겨났다. 예전 같으면 쉬쉬 했을 사회적 약자들이 이제는 입 다물지 않고 자신의 권리를 주장하는 것을 가리키는 ‘앵그리 맘(angry mom, 분노한 엄마)’ ‘힘희롱(power harassment)’이란 말이 그것이다.

세월호 참사와 육군28사단 윤모 일병 폭행 사망 사건 등 부조리한 사회의 이슈를 좌시하지 않고 적극적으로 자기이해를 구하는 40~50대 주부를 가리켜 ‘앵그리 맘’이라고 한다. ‘힘희롱’은 최근 이슈화된 조현아 전 대한항공 부사장의 이른바 ‘땅콩회항’ 사건과 서울시립교향악단 박현정 대표의 막말 사건을 이르는 것으로, 직장에서 갑(甲)의 위치에 있는 직장상사가 자신의 직위를 이용해 부하직원을 괴롭히는 행위를 뜻하는 말이다. 요즘 매스컴에 자주 오르내리는 직장상사와 대학교수, 전직 고관들의 성희롱을 포함해 힘 있는 자와 힘 없는 자의 갑을 관계에서 흔히 발생하는 문제를 잘 표현한 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가 하면, 주가조작과 탈세 등의 혐의로 집행유예와 벌금 254억원을 선고 받은 허재호 전 대주그룹 회장이 벌금 대신 노역을 택할 경우 하루 일당을 5억원으로 책정해 비난 여론이 들꿇는 가운데 ‘황제노역’이란 말이 생겨나기도 했다.
100세 시대를 구가하는 ‘늙었지만 젊게 사는 노인’ ‘노노(NO+老)족’, 오승근의 트로트곡 제목에서 비롯된 ‘내 나이가 어때서’, 인터넷에 재미를 붙인 노년층을 이르는 ‘노티즌’, 취업 못해 30대 이후에도 부모에 의지해 지원을 받는 ‘빨대족’, 실업자와 신용불량자 청년을 가리키는 ‘청년실신’ 등의 신조어들도 말[馬]해를 달군 말[言]들이다. 그런 말들의 홍수 속에 말해가 저물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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