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금으로부터 꼭 33년 전에 나온 미국영화 가운데 <황금연못(On Gloden pond)>이란 영화가 있었다. 마크 라이델 감독이 메가폰을 잡고, 당시 실제 나이가 76세였던 헨리 폰다와 74세였던 캐서린 헵번이 인생의 황금기를 다 보내고 황혼녘에 선 노년기의 슬픔을 실제 노부부와 같은 모습으로 잔잔하게 그려냈다.

영화 속 주인공 노먼(헨리 폰다)은 자존심 세고 괴팍한 교장선생님 출신으로 깐깐한 성격을 버리지 못해 늘 주위사람들을 피곤하게 만든다. 임시교사 출신인 그의 아내 에텔(캐서린 헵번)은 그런 노먼의 비위를 맞춰가며 따스한 이해심과 포용력으로 평온한 일상을 꾸려가는 온화한 성격의 소유자다.
영화는 노먼이 80세 생일을 맞아 미국 뉴잉글랜드의 황금연못이라는 호숫가 별장을 찾아 여름휴가를 보내는 것에서부터 이야기가 전개된다. 처음에는 아무 일 없는 것처럼 노부부의 따뜻한 사랑이 호수 위에 잔잔하게 펼쳐진다.

그러나 늙어간다는 것, 예전에 자주 다녔던 길조차 기억하지 못하는데에 대한 극심한 좌절과 죽음에 대한 공포로 노먼은 극도의 스트레스에 휩싸인다.
“80세가 되니 기분이 어떠세요?”
“음, 그거야 40세가 됐을 때보다 2배는 나쁘지.”

그때 아버지와의 불화로 거리를 두고 지내던 외동딸 첼시(제인 폰다)가 남자친구와 그 남자친구의 아들과 함께 황금연못으로 찾아와 남자친구 아들 빌리를 노부부에게 맡겨놓고 한달간의 유럽여행을 떠난다. 열세살 소년은 ‘옹고집 할아버지’와 함께 대자연의 품에서 낚시질을 하며 닫혔던 마음을 점차 열어가면서 할아버지와 친손자처럼 다독이며 서로를 치유해 간다. 한달 뒤, 유럽에서 돌아온 딸 첼시는 그런 늙은 아버지의 모습을 보고 화해의 손을 내민다.
“아빠의 친구가 되고 싶어요!…”

자꾸만 뇌기능이 떨어져 가는 자신의 쇠락한 모습을 받아들여야 하는 자존심 센 80노인의 모습이 빛나는 호수, 젊고 생명력 넘치는 딸·손자와 대비를 이뤄 보는 이들로 하여금 애잔한 서글픔을 느끼게 해준다. 이 영화는 21세기 가장 심각한 사회문제로 떠오른 ‘노인문제’의 해법을 이미 30여년 전에 호수 위로 잔잔하게 띄워 올린 셈이다.

요즘 우리 사회에서는 잘나가던 왕년에 ‘갑(甲)질’하던 전직 국회의장과 검찰총장, 국립중앙의료원장, 서울대 교수 등 ‘삐딱한 노인들’의 성추문으로 시끄럽다. 새삼 <황금연못>에서 심장발작을 일으킨 남편 노먼을 살려달라 하느님께 기도하던 늙은 아내 에텔의 말이 생각난다.- “이렇게 다 늙어 쓸모 없는 인간을 데려다 뭐에 쓰려구요…” 실로 하늘이 부끄러운 줄도 모르는 ‘삐딱한 노인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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