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인간들의 사는 모습은 천태만상으로 제각각이고 죽음의 모습 또한 제각각이지만, 곱게 죽을 권리는 누구에게나 있다. 인간의 세속적인 욕망으로야 ‘곱고 아름다운 죽음’이란 역설적인 표현이 가당키나 한가. 살 수만 있다면 속된 말처럼 “벽에 똥칠 할 때까지’ 살고 싶은 것을… 여기에서 지난 옛시절 죽음의 한 모습을 살펴보자.

‘광막한 광야에 달리는 인생아/ 너의 가는 곳 그 어데나/ 쓸쓸한 세상 험악한 고해에/ 너는 무엇을 찾으러 가느냐/ 눈물로 된 이 세상에/ 나 죽으면 그만일까/ 행복 찾는 인생들아/ 너 찾는 건 설움’
1920년대 후반에 나라 안을 떠들썩하게 하며 이른바 밀리엔셀러를 기록했던 윤심덕(尹心德)의 노래 <사(死)의 찬미>다. 제목은 죽음에 대한 찬미로 돼 있지만, 지독한 허무주의나 염세주의로 가득찬 가사를 입힌데다가 경쾌한 이바노비치의 왈츠곡 <도나우강의 잔물결> 곡조를 타고 흐르는 애절한 윤심덕의 목소리는 듣는 이들의 가슴을 애잔케 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성악가(소프라노), 최초의 관비유학생(일본 우에노 음악학교) 그리고 최초의 대중가수이자 최다 레코드 판매량 보유자로서 한 시대를 풍미한 윤심덕. 그녀는 일본 유학시절 만난 와세다대학 영문과 학생으로 유부남이기도 했던 목포 갑부의 아들 김우진과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결국 <사의 찬미> 레코딩을 마치고 고국으로 돌아오던 부관연락선에서 서로 붙안고 현해탄에 투신,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했다. 1926년 8월3일의 일로 그들의 나이 서른살이었다. 당시 동아일보 사회면에는 ‘청년 남녀의 정사(情死)’라는 타이틀의 사건기사로 소개돼 장안이 온통 그들의 얘기로 떠들썩 했다. 결국 <사의 찬미>는 번안곡 노랫말을 지은 김우진이나 애조 띤 목소리로 세상을 한탄한 윤심덕의 ‘엔딩노트’가 된 셈이다.

요즘 일본 노년층에서 ‘엔딩노트(ending note)가 유행이다. 이 엔딩노트는 고령자가 혼수상태에 빠지거나 사망했을 때를 대비해 미리 가족에게 전하는 말, 주치의와 가족연락처, 장례절차 등을 기록해 두는 유언장 같은 문서다. 이것이 유언장과 다른 점은, 회복 불가능이거나 혼수상태에 대비해 연명치료 여부를 미리 정하게 하기 위함이라는 데 있다. 즉 ‘곱게 죽을 권리장전’ 같은 것이라고나 할까.
존엄사의 논란이 아직도 끊이지 않는 우리 사회의 정서로서는 아직도 멀고도 먼 딴세상의 얘기로만 들린다. 죽음에 이르러 담담하게 내 마음을 전한다는 건 또다른 정신적 고통이 아닐까. ‘곱게 죽을 권리’는 쉽게 찾아지게 될 것 같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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