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여성이 도덕적으로 노예화 했던 우리의 옛 전통사회에서는 대부분의 여성들이 가혹한 전통의 굴레에 갇혀 제 목소리 한번 제대로 내지 못하고 숨 죽이며 살았다고 흔히들 얘기하지만, 상상키 어려운 섹스스트라이크와 우먼파워의 일면을 엿볼 수 있는 옛책의 기록들이 있다.

여말(麗末)의 <고려도경>이란 책에는 남녀가 함께 혼욕(混浴)을 했다는 기록이 있다. 그런가 하면 신라의 여인네들은 한층 더 자유분방 했다. 사녀(士女, 선비의 부인)들이 흥륜사 절의 전탑을 밤새 돌다가 서로 눈만 맞으면 절 옆에 있는 으슥한 계림 숲속에 들어가 야합 통정하는 일이 비일비재 했다.
옛책 <고려사>속의 ‘박유전’에 보면 박유란 정승의 이색 상소문과 그 상소문에 얽힌 아녀자들의 이야기가 나온다.

‘본래 우리나라는 여자가 많고 남자가 적은데다 처 하나만을 얻어 사는 것을 존대하여 아들이 없는 자도 감히 첩 얻기를 주저하거늘, 외국인(원나라 사람)은 우리나라에 와서 한정없이 첩을 거느리니 이러다가는 모든 인물이 북으로 흘러갈까 염려되옵니다. 대소 신료(臣僚, 모든 신하)들에게 허락하여 서처(庶妻, 첩)을 보게 하되 그 서처 소생의 아들 딸도 적자처럼 종사하면 지금과 같은 원망은 없어질 뿐더러 호구도 늘어 국력도 커질 것이옵니다.’
‘부녀자들이 이 말을 듣고 분함을 못참아 하더니, 때마침 박유가 탄 가마가 지나가자 한 늙은 할미가 손가락질 하며 서처를 두자고 청한 자가 바로 저 늙은 거지라고 욕하자 이를 들은 여인네들이 서로 손가락질 하고 침을 뱉곤 하였다. 또한 당시의 재상들은 이 서처제를 욕하는 부인들의 등쌀에 잠을 자러 집에 가지도 못하였다.’

실로 대단하달 수밖에 없는 섹스스트라이크이자 우먼파워가 아닐 수 없다. 그로부터 700여년이 지난 최근 이웃나라 일본에서 임신·출산을 이유로 직책을 강등시킨 인사가 위법인 ‘마타하라’에 해당한다는 최고법원의 첫판결이 내려 화제다. 마타하라는 임신·출산을 이유로 본인의 동의 없이 인사이동 시키거나 임신·출산과 관련한 언어적 폭력을 행사하는 ‘모성 괴롭힘(maternity harassment)’이라는 두 영어단어의 앞부분을 조합한 ‘mater+hara’의 일본식 발음이다.

히로시마의 한 병원 부주임으로 근무하던 한 여성이 임신을 이유로 업무부담이 적은 부서로의 이동을 희망했으나, 병원측이 본인의 동의 없이 인사발령을 내면서 직급도 일반직으로 강등시켜 소송을 냈던 것이다. 이 일이 남의 나라 일만이 아님에 우리가 주목하는 것은, 우리 사회 어느 구석에선가 ‘마타하라’가 끊임없이 자행되고 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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