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950년 6·25전쟁이 끝난 뒤인 1955년, 미국인 해리 홀트는 한국전쟁의 폐허 속에서 전쟁의 아픈 상흔처럼 버려진 혼혈전쟁고아 여덟명을 미국으로 입양했다. 아이들은 어디까지나 가정의 부모 아래서 따뜻하게 커가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다. 이것이 오늘날 입양기관인 홀트아동복지회의 설립이념이 됐다.

이제까지 이 홀트아동복지회를 통해 국내외 새가정에 입양된 아이들의 숫자는 무려 24,000여명을 헤아리고 있으며, 지금도 한 해 평균 500여명의 아이들이 이런저런 사유로 입양을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참 묘한 일은 수십년 전 갓난아이 때 해외로 입양돼 양부모 밑에서 남부러울 것 없이 잘 자란 아이들이 청년기를 넘어서면 거의 어김없이 자신을 낳아준 혈육을 찾아 이역만리 모국땅을 밟는다. 생각 같아서는 자신을 낳아 매몰차게 버린 생부모를 생각조차 하기 싫을 법도 한데 그렇질 않은 모양이다. 그쪽 사회에서 피부와 머리색깔과 눈색깔이며 생김새가 다른 자신이 느끼는 이질감과 정체성의 혼란 속에서 자신의 출생에 대한 궁금증까지가 더해져 핏줄을 찾는 게 아닐까 싶다.

그런 자식들을 놓고 우리 사회에서는 옛날부터 ‘머리털 검은 짐승은 거두는 게 아니다’라는 자조 섞인 경계의 속언이 전해져 왔다. ‘낳은 정(情)이 큰 걸까, 기른 정이 큰 걸까?’이 물음은 지금도 ‘출생의 비밀’과 더불어 우리네 안방을 뜨겁게 달구고 있는 TV 막장드라마의 영원한 단골주제가 돼 있다.
오래 전 국내에서 있었던 일이지만, 슬하에 손(孫)이 없는 한의사 노부부가 오갈데 없는 한 남자아이를 거두어 친자식 이상으로 애지중지 키워 대학공부까지 시켰으나 무위도식으로 일관하던 이 아들이 어느 날 짐승으로 변해 재산 상속을 해주지 않는다며 둔기로 양아버지를 무참히 살해 한 패륜적 살인사건이 있었다.
최근엔 유명배우 차승원이 아내의 전 남편에 의해 ‘지금 키우고 있는 아들을 마치 친아들인 것처럼 말하고 다녀 친부(親父)로서의 명예가 훼손됐다’는 웃지 못할 소송을 당했다. 그러자 차씨는 자신의 아들을 “마음으로 낳은 아들이라 굳게 믿고 있으며 지금도 후회하지 않는다”고 해 많은 뭇부모들의 가슴을 뜨겁게 울렸다. 역시 낳기만 한 마른 정보다는 가슴으로 뜨겁게 품어안은 기른 정에 맘이 갔을 터다.

결국 이 사건은 아들 생부(生父)의 소송취하로 어이없었던 ‘해프닝’의 막을 내렸지만, 이 땅에 아직도 엄연하게 존재하고 있는 ‘핏줄’에 대한 관념을 다시한번 돌아보게 하는 계기가 됐다. 이런저런 이해관계에 얽혀 있는 ‘핏줄소송’이 전에 없이 줄을 잇는 지금의 세태 속에서 우리 사회 가족해체의 어두운 그림자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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