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옛날 옛적의 직업은 타고난 신분(身分)에 따라 결정지어졌다. 신분이 상속되던 시절이었으니, 곧 어떤 부모에게서 태어나느냐에 따라 인생이 하늘과 땅 차이처럼 갈라졌다.
우리 역사상 신분제가 처음 시행된 때는 고조선 때로 본다. 고조선의 <팔조금법(八條禁法)>에 ‘도둑질 한 자는 노비(奴婢)로 삼는다’ 했으니, 엄연히 신분의 상하등급이 존재한 것이다. 신라시대에 와서는 신분이 지배계급인 성골(聖骨)과 진골(眞骨), 그 밑 하위계급인 6두품(六頭品)으로 나뉘었다.
신분계층에 따른 직업군이 보다 세세하게 나뉜 것은 고려 때부터다. 이때는 크게 지배층과 서민층, 천민층(賤民層)으로 나뉘었다. 최고위층인 지배층은 왕족과 그 친인척, 그리고 문무·양반 귀족들로 지금의 대학격인 국학(國學)에 입학할 수 있었고, 과거시험에 응시해 벼슬길에 나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다. 과거시험은 이미 신라 원성왕 때인 788년을 제일 처음으로 치나, 실제로 제도적으로 갖춰져 시행된 건 고려 광종 때인 958년으로 당시 당나라에서 고려로 귀화한 쌍기의 제안으로 당나라 제도를 모방, 독서삼품과(讀書三品科)를 두면서부터다. 물론 지배층만이 응시할 수 있었는데, 독서력으로 시험의 기준을 삼았다.
조선조에 들어서면서부터는 고려시대의 신분제를 토대로 보다 엄격하고 확연하게 신분이 네계급으로 나뉘었고, 대물림으로 상속돼 비루먹어도 한 번 양반은 자자손손 영원한 양반, ‘상것’으로 불린 종은 대대로 종의 신분을 면치 못했다.
그 네계급은 양반, 중인(中人), 상인(常人), 천민이다. 조선시대의 양반들은 나라의 주요 관직과 특권을 독점했다. 그 밑의 중인계급은 의관(醫冠), 역관(譯官, 통역관), 관상가, 도화(圖畵)직 등 주로 전문기술직 종사자들이었다. 다음의 상인은 일반 백성들로서 ‘양인(良人)’이라고도 불렸다. 주로 농(農)·공(工)·상(商) 분야의 직업을 가진 상사람들이다. 맨 밑 천민계급은 노비, 백정, 재인(才人)·광대, 승려, 무속인들인데, 한 마디로 사람으로서 제대접을 받지 못했다.
이러한 신분계급은 1895년 (고종32) 갑오경장 이후 신분계급 타파가 제도화 되고, 신문화의 유입과 민족적 자각에 의해 점차 폐지되기에 이르렀다. 시나브로 그러는 사이에 일제에 의해 고등고시(高等考試)가 이땅에 뿌려졌고, 이 고등고시는 만인 평등의 민주적 질서 아래에서 누구나 머리 하나로 단숨에 신분상승을 하고 출세가도를 달릴 수 있는 유일한 등용문이 되었다. 그래서 ‘개천에서 용(龍)난다’는 말이 생겨났다. 그런데 이 말도 이젠 사장될 판이고, ‘개천의 용’ ‘강남의 용’을 볼 일도 없게 됐다. 대통령이 최근 소위 ‘관피아’ 척결을 위해 고시제를 없앤다 했으니 말이다. 참으로 세월 무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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