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고향의 봄은 훈훈한 남풍바람에 묻어왔다. 코끝을 간질이는 바람에선 알싸한 흙냄새가 났다. 늙으신 아버지의 마른 손거죽같았던 푸석한 땅엔 촉촉하게 물기가 올랐다. 마을 앞 논둑길에 나앉으면 겨우내 얼어붙어 있던 봄물이 찰랑대며 귓가를 간질여 흡사 산토닌 먹은 날처럼 어찔어찔 현기증이 났다. 논둑가엔 빈 우렁이 껍질이며 올갱이 껍질, 마른 풀잎 등등 겨울의 잔해들이 가득 밀려와 쌓였다. 마을 앞산엔 꽃철은 일러 아직 꽃은 피지 않았고, 마을 신작로가 천변에 줄지어 선 버드나무 가지는 한껏 물이 올라 흡사 녹두가루를 엷게 흩뿌려 놓은 것처럼 푸릇푸릇한 눈망울을 달고 바람에 떨었다. 서울에서 이사왔대서 ‘서울집’이라 불린 그 함석지붕집 마당가 자목련은 도꼬마리같은 꽃봉지를 안개비 속에 머금고 아직은 피기 전이다.
‘남으로 창을 내겠소/ 밭이 한참갈이/ 괭이로 파고/ 호미론 김을 매지요/ 구름이 꼬인다 갈 리 있소/ 새 노래는 공으로 들으랴오/ 강냉이가 익걸랑/ 함께 와 자셔도 좋소/ 왜 사냐 건/ 웃지요’
이 즈음의 시골서정을 노래한 김상용(金尙鎔) 시인의 시 <남으로 창을 내겠소>(1934)이다. <농가월령가>의 ‘2월령’에서도 이 철의 정경을 이렇게 그렸다.
‘산채는 일렀으니 들나물 캐어먹세/ 고들빼기 씀바귀며 소루쟁이 물쑥이라/ 달래김치 냉잇국은 입맛을 돋구나니’
처럼이나 이때는 여기 저기 야산 등성이며 밭두렁에 엎드려 나물캐는 아낙들의 고단한 모습이 아지랭이를 타고 가물가물 피어올랐다.
‘한푼 두푼 돈나물(돌나물)/ 쑤쑥 뽑아 나싱개(냉이)/ 이개 저개 지칭개/ 잡아뜯어 꽃다지/ 오용조용 말매물(말냉이)/ 휘휘 둘러 물레등이(물레나물)/ 길게 가면 질경이/ 골에 가면 고사리’
이 모두가 꽃철을 전후해 산야에 나는 봄나물 들나물들이다. 끼니를 잇기 어려웠던 시절엔 춘궁기의 허기를 채워주던 구황식물(救荒食物)들이다. 이른 봄부터 꽃철 가고 잎철이 와도 뜯어먹던 나물들인데 꽃철엔 들나물, 잎철엔 산나물이다. 산나물로야 취나물이 으뜸이다. 참취, 수리취, 곰취, 미역취, 단풍취, 분취, 서덜취, 개미취 등인데 요즘엔 온통 비닐하우스에서 키워내니 옛적의 풍미가 덜하다. 이젠 먹고 살 만하니 전통시장에서나 산나물 들나물을 구경하는 세상이 됐다.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 하여 ‘해와 달이 입맞춤 하는 날’이라는 춘분(春分)절기가 사흘 전이었다. 지금 매화의 고장인 광양에서는 홍매(紅梅)가 황사바람 속에서 피어나고, 이어서 다투듯 유채며 벚꽃, 개나리, 진달래, 목련이 꽃멀미를 느끼도록 꽃망울을 터뜨릴 것이다. 그런데 영동지방엔 때아닌 꽃샘 폭설이라니… ‘춘래불사춘(春來不似春)’이라, 봄이 왔으되 봄은 아직 멀었는가?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