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살을 에는 듯한 추위로 사위(四圍)가 꽁꽁 얼어붙는 한겨울이 되면 아산만 포구가 지척인 고향의 십리들판은 밤새 먹이를 찾아 날아드는 철새 울음소리에 덮여 쉬 잠들지 못했다. 거무튀튀하게 보호색을 띠고 있는 기러기며 윤기나는 진초록 머리깃에 흰 배를 드러낸 청둥오리, 그놈들보다는 몸집이 좀 작은 가창오리떼가 바시락거리며 구구대는 소리가 시린 뻘바람을 타고 쓸리어 왔다간 쓸리어 갔다. 이따금 인근 미군부대에서 오리사냥 나온 미군들의 탕탕~타앙~! 하는 엽총소리가 문창호지를 뒤흔들기도 했다.
동네 형들은 사나흘 오리사냥 준비로 부산했다. 읍내 장에서 구해온 ‘싸이나(청산가리)’를 촛농을 녹여 만든 하얀 캡슐 속에 넣고 밀봉한 다음 오리들이 좋아하는 붕어나 볶은 메뚜기 뱃속 혹은 콩 속에 넣고 야밤에 오리들이 자주 날아오는 들판에 흩뿌렸다. 그리고는 동이 트기 전 들판에 나가 ‘싸이나’ 먹이를 먹고 널부러져 있는 죽은 오리들을 수거해 오는 것이다. 형들이 미처 발견 못한 놈들은 우리 조무래기들 차지가 됐다.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신새벽에 학교갈 채비를 하고 집을 나서서는 두어시간 남짓 들판을 헤집고 다녔고, 행여 죽은 오리를 줍는 횡재를 하는 날이면 누가 볼세라 나만의 표식을 해 오리를 숨겨놓고는 오후 하학길에 희희낙락 집으로 가져가는 것이다.
그런 오리사냥 탓에 한해 겨울이면 동네에서는 개가 너댓마리씩이나 입에 게거품을 물고 버둥거리다 죽어나갔다. 청산가리를 먹고 죽은 오리 내장을 꺼내 마당가 잿더미 속에 버린 것을 헤집어 먹고는 속이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 죽곤 했던 것이다.
우리 한반도를 찾는 철새는 우리나라에서 겨울을 나는 기러기, 고니, 독수리, 두루미, 가창오리 등의 겨울철새가 112종, 이른봄에 날아와 번식을 하는 뜸부기, 제비, 백로, 뻐꾸기, 후투티, 물총새 등 여름철새가 64종, 남녘에서 월동하고 북녘에서 번식하며 우리나라를 통과만 하는 도요새, 물떼새, 제비갈매기 등의 나그네새 90종, 그외 떠돌이새를 합쳐 대략 266종, 수백만마리에 이른다.
그 철새들이 최근 AI(조류인플루엔자)의 주감염원으로 밝혀져 철퇴를 맞고 있고, 국내 가금농가가 초비상 상태다. 이미 예방차원에서 오리 23만여 마리를 살처분 해 사육농가들도 정신적 공황상태에 빠져들어 있다. 생태환경에 따라 자연의 순리대로 오직 번식과 먹이활동 만을 구하는 철새에 비하면, 6월 선거를 앞두고 이합집산을 거듭하고 있는 ‘철새 정치인’들의 후안무치(厚顔無恥)가 실로 만물의 영장임을 한없이 부끄럽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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