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돈이 양반이다’ ‘돈만 있으면 귀신도 부릴 수 있다’ ‘돈만 있으면 개도 멍첨지다’-이 모두가 돈의 귀함을 이를 때 빗대어 쓰는 속언들이다. 아무려면 사람의 가치가 돈보다 못하지 않을 터이지만, 예나 지금이나 사람들이 ‘돈의 노예’가 되어 있는 것만큼은 분명한 것 같다.
‘의주에 사는 만상(灣商) 임상옥은 주로 청나라와의 홍삼무역을 통해서 은과 비단, 화폐를 축적한 상업자본가였다. 그가 한번 인삼을 가지고 북경에 가서 실어 온 은덩어리를 쌓으면 마이산 만하고, 비단을 쌓으면 남산루 만하였다. 그는 뒤에 곽산 군수, 구성 부사 벼슬을 사기도 했다.’-<비변사등록>
임상옥이란 거상(巨商)이 중국과 교역을 하며 주물렀던 돈의 규모를 간접적으로나마 짐작케 해주는 기록이다. 물론 임상옥의 뛰어난 상술과 이재술(理財術)이 그렇듯 어마어마한 부(富)의 축재를 가능케 했겠지만, 그와 같은 ‘부의 쏠림’ 현상은 그때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이 상위 10% 이내 거족(巨族)들이 향유했다.
‘지금 국내 농지가 대략 80만결이 되고, 백성은 대략 800만명이다.…우리나라 부자로서 영남의 최씨와 호남의 왕씨는 만석곡식을 추수하고 있다. 이들의 농지를 계산해 보면, 400결 이하는 없으니 이는 3,990명의 목숨을 빼앗아 한 집이 부유하게 된 것이다. 그런데도 조정에서는 서둘러 부자에게서 덜어내고 가난한 자에 보태주어 그 재산을 균등하게 하는 것에 힘쓰지 않는다.’
다산 정약용이 그의 저서 <여유당전서>에서 그 당시 사회에서의 빈부격차와 양극화 현상을 개탄한 말이다. 다산의 이 말은 수백년이 지난 오늘날의 우리 사회에서도 유효하다.
지난 9~10일 금융감독원과 국세청이 내놓은 국정감사자료에 따르면, 100억원 이상을 은행에 예치한 이른바 ‘수퍼리치(Super Rich, 대부자)’ 고객이 500명을 넘고, 이들이 맡긴 돈의 총액수는 10조원을 넘는 것으로 나타났다. 1인당 평균 201억원을 은행에 맡긴 셈이다.
그런가 하면 종합소득 신고자 중 상위 100명의 1인당 연평균 소득은 자그마치 215억7382만원에 달했다. 이들의 대부분은 자영업자와 의사·변호사 등 전문직 종사자들이다. 또한 봉급생활자 중 상위 100명의 1인당 연소득은 67억4795만원으로 종합소득 상위 100명의 3분의 1 수준인 것으로 나타났다.
이처럼 고소득층의 소득이 급격히 불어난 것은 ‘경제성장의 과실이 부자들에게 돌아갔다는 뜻’이라는데, 그런 과실의 맛을 고루 볼 수 있는 날이 나의 세기에 오기나 할는지 가슴이 먹먹해진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