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옛날 조선시대에 기로소(耆老所)라는 관청이 있었다. 나라에서 운영하는 국립 경로당 같은 곳이다. 이곳에는 문과 출신의 정2품(영의정, 좌·우의정 삼정승과 지금의 장관급의 각 조 판서) 이상의 전직·현직 문신(文臣)으로 나이 70세 이상의 사람만 들어갈 수 있었다. 이들을 ‘기로소 당상(堂上)’이라고 불렀고, 정원 제한은 없었다.
이 기로소에는 왕도 참여했다. 숙종은 59세, 영조와 고종은 51세에 각각 들어갔는데, 조선조를 통틀어 기로소 출신은 7백여명에 달했고, 그중 최고령자는 윤경(尹絅)이란 인물로 98세였다.
기로소에 드는 것은 그야말로 개인의 영예이자 가문의 영광이 아닐 수 없었다. 우선 왕이 친히 어필(御筆)로 이들 원로대신들의 이름을 기록한 뒤 매년 봄 삼월삼짇날과 가을의 중양절(重陽節, 9월9일)에 기로연이라는 커다란 나라 경로잔치를 베풀었다. 이 기로연 때는 임금이 선온(宣醞)이라는 술과 1등급 풍악, 그리고 전답(田畓)과 노비, 염전 등을 하사품으로 내렸다. 특별히 벼슬이 1품(영의정, 좌·우의정)에 오르고 학덕이 높은 원로대신에게는 ‘궤장(几杖)’ 즉 앉아서 몸을 기댈 수 있는 방석-안석(案席)과 장수지팡이를 하사하기도 했다. 기록에 의하면, 잔치는 날이 저문 뒤에야 파했고, 참석자들은 부축을 받아 행사장을 나올 정도로 모두 취해 있었다고 한다.
숙종~영조 때에 이르러서는 나이 많은 관원과 일반 백성들도 모두 참여시켜 임금과 신하의 의(義)를 다지고 경로사상을 고취시켰다.
그러나 그후로 세상은 ‘상전벽해(桑田碧海;뽕나무밭이 변해 푸른바다가 되듯 세상이 덧없이 크게 변함이 심함을 비유하는 말)’가 돼 웃어른을 받드는 경로사상은 땅바닥에 떨어져 개도 물어가지 않는 꼴이 된 지 이미 오래다.
그런 세태를 비웃기라도 하듯 요즘 ‘6075(60~ 75세) 신(新)중년’ 세대가 뜨고 ‘꽃보다 할배’라는 유행어가 젊은이들의 입에 오르내린다. 한 케이블 TV가 60~70 나이에도 불구하고 왕성하게 현역활동을 하고 있는 네명의 탤런트들을 등장시켜 그들의 좌충우돌 만국유람기를 내보내고 있는 게 계기가 됐다.
그러나 실제로 6075 신중년세대는 예전의 ‘뒷방늙은이’들이 아니다. 체력도 체질도 실제 나이보다 7년정도 젊어진데다 순자산도 40대를 훨씬 앞질러 백화점 명품코너에서는 ‘왕(王)손님’ 대접을 받는다. 뿐이랴. 청바지, 영캐주얼 차림에 스마트폰으로 카카오톡을 즐긴다. 그야말로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는 ‘할배들’의 신명나는 무한진격이 지쳐있는 우리 사회에 새로운 활력으로 다가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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