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금으로부터 142년전인 1871년(고종8). 미국이 조선과의 강제통상을 요구하며 군함 3척으로 강화도를 무력 공격한 신미양요 난리를 치른 후 흥선대원군은 ‘서양오랑캐’에 대한 적개심으로 분기충천하여 나라의 문빗장을 더욱 굳게 닫아걸고 ‘위정척화비(衛正斥和碑)’를 나라 안 곳곳에 세웠다.
‘서양오랑캐가 침범하니 싸우지 않으면 화해할 수밖에 없고, 화해를 주장하는 것은 곧 나라를 팔아먹는 것이다. 이로써 만대 자손에게 경계하게 하노라.-병인년에 짓고 신미년에 세우다.’
#1981년 5월18일. 1979년 12월12일 군사반란으로 정권을 잡은 전두환의 신군부는 1980년 5·18 광주 민주화 운동 탄압 후 제5공화국을 출범시키고, 5·18 1주년을 맞아 광주에 쏠릴 국민, 특히 젊은이들의 관심을 잠재우기 위해 막대한 비용을 들여 ‘국풍 81’이라는 대규모 문화행사를 벌인다.
‘새 역사를 창조하는 것은 청년의 열(熱)과 의지와 힘이다’라는 그럴싸한 캐치프레이즈를 내걸고 여의도광장과 고수부지에서 5일간 전국 198개 대학의 학생6천여명, 6백여만명의 관람객이 북적이는 가운데 밤낮 없이 행사가 진행되었다. 이 행사의 야간 가요제에서 대상을 받은 가수가 이용이다.
#1988년 서울 올림픽. 국민 모두가 이 세계적인 체육축제에 ‘손에 손 잡고♬♩♪~’ ‘아, 대한민국’ 노래를 부르며 환호했다.
#2002년 한·일월드컵 4강 신화 달성. 정말 ‘꿈★은 이루어진다’였고, ‘때~한~민국, 짝짝짝 짝짝!’으로우리 모두 한 배달민족임을 뿌듯하게 확인했다.
#2013년. 영화 홍보차 내한한 맷 데이먼과 윌 스미스, 뮤지션 퀸시 존스 등 유명 외국인들에게 한결같은 질문은 “두유 노 강남스타일?(Do you know Gangnam Style?)”이고 시키느니 엉거주춤 ‘말춤’이다.
위에 든 몇몇 사례처럼 어느 역사시대고 내것, 우리 것에 대한 자긍심이 유난히 큰 이들을 일러 ‘국수주의자(國粹主義者)’라고 부른다. 즉 제 나라의 국민적 특수성만을 가장 우수한 것으로 믿고 유지·보존하며 남의 나라 것을 배척하는 주의자다. 한국 하면 으레 김치와 불고기가 대명사로 불렸듯 이제는 독도와 싸이의 ‘강남스타일’, K-팝이 한국의 대표 문화코드가 되어 있고, 그것에 지나치게 함몰되어 있는 이들도 상당수다.
인터넷에서는 이들을 일러 ‘국뽕’이라고 한단다. ‘국가’와 ‘히로뽕(필로폰)’을 이르는 비아냥조의 조어다. ‘국뽕’에 대한 반발로 ‘국까’(국가+까다의 조어)란 말도 생겨 인터넷에 돌아다닌다.
‘국뽕’이나 ‘국까’나 그 어감이 비속어의 느낌이 큰데다 균형감각을 잃은 비난은 썩 바람직하지 못하다. 내가 가지고 있지 못한 순수한 애국심으로 봐줄 수는 없는 걸까? 말이 제 격을 잃으면 우리 모국어도 생명력을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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