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사람에게만 격(格)이 있는 게 아니다. 음식에도 제나름의 격이 있다. 어디에서, 누가, 언제, 어떻게 만들어 먹었느냐에 따라 음식의 격이 나뉜다.
여름철 대표음식으로 알려져 있는 냉면은, 예전엔 일반 서민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음식이 아니었다. 여름철에 먹는 음식은 더더욱이나 아니었다. 갖추어야 하는 재료가 서민들로서는 엄두도 못낼 별식(別食)이었다. 옛 전통사회에서는 한수(漢水)이북의 추운지방, 함경도나 평안도의 사대부가에서 길고긴 한겨울 밤에 헛헛함을 달래기 위해 만들어 먹던 밤참이 냉면이었다. 이때 등장한 것이 냉면의 지존(至尊)이랄 수 있는 꿩냉면이다.
꿩냉면은 육수나 고명의 주재료로 꿩고기를 쓰는 것이 다른 냉면과 다르다. 여러 새 중에서 하필 꿩인 것은 꿩고기 맛이 뛰어나고, 산간지대에서 쉽게 얻을 수 있는 재료였기 때문이다.
저 중국 송나라 사람 서긍의 <고구려 견문기>에 보면, ‘세상의 고기 맛 중 고구려의 들새(꿩)는 만가지 맛을 품어 왕과 귀인들이 그 오묘한 맛에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고 하여 이미 오래 전부터 꿩고기를 즐겼던 듯싶다.
오늘날 냉면의 대명사처럼 불리는 평양·함흥냉면의 원조격인 꿩냉면은 추운 겨울에 꿩탕을 만들어 밖에서 꽁꽁 얼려두었다가 밤에 야찬으로 냉면을 말아먹었던데서 유래됐다. 산에서 잡아온 꿩은 끓는 물에 삶지 않고 마른털을 그대로 뽑는다. 사골을 우려낸 육수를 쓰는 여느 냉면과 달리 꿩냉면은 꿩과 무를 넣고 푹 끓여 육수를 내고 삶아낸 고기는 잘게 발라 고명으로 얹는다. 냉면발은 메밀가루와 고구마 전분을 반죽해 뽑는다. 이 냉면국수를 삶아 그릇에 담고 육수를 부은 다음 소금에 절였다 양념에 무친 오이채, 꿩고기, 실고추, 채썬 배, 달걀지단 등의 고명을 얹고 겨자와 양념장을 곁들여낸다.
북에 평양·함흥 꿩냉면이 있다면, 남쪽에는 진주냉면이 있다. 바다가 가까워 마른명태머리, 건새우, 건홍합 등의 해물재료로 육수를 내고, 쇠고기(돼지고기)를 납작하게 저며 양념한 다음 달걀옷을 입혀 지져 1cm 너비로 썬 것과 물기 없앤 무김치, 배채, 달걀지단, 실고추, 잣을 고명으로 올린다. 국수면은 지리산 주변의 산간에서 나는 메밀과 전분을 반죽해 만든다.
그런가 하면, 밀가루에 소금(간수) 넣어 반죽한 후 하루를 숙성시킨 생면을 이용하는 부산밀면은 6·25가 낳은 밀국수 냉면이다. 이 밀면은 돼지뼈와 양지머리로 육수를 내는데 6·25 이후 부산에 피난온 실향민들이 고향그리며 냉면 대신 해먹던 여름 삼복(三伏)의 별미였다. 올해 초복이 이번주말인 13일에 들었다. 복달임 음식으로 여러 보양식을 떠올리겠지만, 한두번쯤은 소문난 냉면집을 찾아 땀을 들여보는건 어떨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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