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998년 당시 미국 국무장관이었던 매들린 올브라이트가 아라파트 팔레스타인 수반을 만날 때였다. 올브라이트는 왼쪽 옷깃에 벌 브로치를 달고 나타났다. 그녀는 벌 브로치를 통해 자신의 불편한 심기를 내비치려 했다. 즉 벌이란 놈은 상대방이 먼저 자신을 건드리지 않는 한 공격하는 법이 없지만, 일단 쏘이면 생명까지도 위험할 수 있다. 올브라이트는 이같은 벌의 특성을 통해 ‘쓸 데 없는 행동을 하지 말라’는 무언의 경고메시지를 벌 브로치에 담았던 것이다.
김대중 정부시절 우리나라에 왔을 때는 햇살모양의 브로치를 달았었다. 김 전 대통령이 추진했던 햇볕정책을 지지하고 있다는 암시를 준 것이었다. 또한 사담 후세인 이라크 전 대통령이 자신을 ‘뱀같은 여자’라고 비난했을 때는 뱀 브로치를 달아 이라크 측을 아연실색케 했다.
이처럼 여성 리더들에게 패션은 단순히 멋을 내기 위한 치장의 수단만이 아니라 말로 표현하지 못하는 메시지나 상징을 전달하는 정치적인 도구로 활용된다. 그래서 워싱턴포스트지의 저명한 패션저널리스트인 로빈 기번은 “여성 정치인이 입은 옷은 정치적 성명 발표와 같다”고 단언했다. 실제로 패션의 그런 기능을 일컬어 ‘패션정치(Fashion Politics)’란 말이 생겨났다.
세계적으로 패션정치의 첫 손에 꼽는 여성리더로서는 미국의 퍼스트레이디 미셸 오바마 여사다. 그녀는 과거 미국의 패션 아이콘으로서 ‘재키룩’이라는 패션장르를 탄생시킨 재클린 케네디보다도 한 수 위로 평가되고 있다. 미셸은 지난 1월에 있었던 오바마 대통령의 제2기 취임식 때 감청색 코트를 단정하게 입었다. 그 분위기가 미국이 짊어지고 있는 막중한 책임감을 느끼게 해줬다고 평가됐다. 그런 탓에 미국의 한 유명주간지는 그녀를 “패션 역사상 최고의 ‘레인메이커’(rainmaker;행운을 부르는 사람, 절대적인 영향력을 미치는 사람을 가리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
그런가 하면 우리나라의 박근혜 대통령도 그에 못지 않은 패션리더에 속한다는 평이다. 늘 같은 머리 스타일에 비슷비슷해 보이는 바지정장 차림이지만 그때 그때 옷색깔을 달리해 자신이 간접적으로 표출하고 싶은 정치적 메시지와 의지를 표현하고 있다. 지난 2월25일 취임식 때는 카키색과 녹색계열의 국방색 재킷을 입어 안정감을 표현해 보이려 했다는 얘기다. ‘옷이 날개’라지만 옷은 또한 마음을 비추는 거울과도 같다. 그래서 박대통령의 앞으로의 패션 변화가 더욱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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