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지금으로부터 117년 전인 1896년 5월26일, 러시아 최후의 황제인 니콜라이 2세(재위 1894~1917)의 대관식에 우리나라 대표사절로 특명전권공사 충정공 민영환(閔泳煥)이 참석하게 됐다. 그는 한문으로 쓴 사행일기(使行日記)인 <해천추범(海天秋帆)>에서 대관식 당일의 모습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5월26일 갬. 오전5시에 우리 일행은 예복을 입고 터키공사관으로 가서 각국 공사와 함께 크레믈린궁으로 갔다. 러시아식 예배당에서 대관식을 거행하는데, 모자를 벗지 않으면 들여보내지 않게 되어 있다. 우리나라와 청국(淸國)·터키·페르시아 공사는 모자를 벗을 수 없는 복장이므로 들어가지 않고 예배당 밖 누상(樓上)에서 구경하였다.’
그때 민영환이 갖추어 입은 예복은 사모관대가 딸린 전통 대례복(大禮服)이어서 모자를 벗을 수 없었고, 따라서 식장 밖 발코니에서 대관식을 지켜볼 수 밖에 없었다. 이것은 어디까지나 주최국의 관습에 따른 의전(儀典)을 좇은 것이었다. 문전박대를 당한 것같은 불쾌감이 치밀어 올랐을 터이지만, 순순히 물러나온 것은 상대를 최대한 존중한 외교적 예의였다. 무례(無禮)는 오히려 저쪽의 관례를 모르고 덤벙댄 이쪽이 범한 꼴이 됐다.
얼마전 마이크로소프트사의 최고경영자인 미국부자 빌 게이츠가 우리나라를 다녀가면서 청와대에 들렀을 때, 박근혜 대통령과의 인사모습이 누리꾼들의 입도마에 올랐다. 왼손을 바지주머니에 찔러 넣고 박대통령과 악수하는 모습을 두고, 누구는 문화적 차이라고 했고, 아무런 뜻 없이 나온 버릇일 것이라고도 했다. 그러나 상당수는 아무리 평소의 버릇이라도 그래도 한 나라 대통령의 영접인데 정말 ‘버르장머리 없는 시건방진’ 자세라고 꼬집었다. 그는 시진핑 중국주석을 빼고는 여타 외국원수들과는 모두 한 손을 주머니에 찌른 채 인사를 나눴다.
그는 학교시절 남에게 지는 것이 싫어 늘 일등을 하려 했다고 한다. 그러나 학교생활과 규칙에 제대로 적응하지 못했던 외골수여서 그의 어머니는 그를 바로 세우려 무진 애썼다. 보이스카우트 캠프참여, 테니스·수상스키 체험이 그렇고, 요일에 따른 옷 색깔 선택과 식사규칙에 이르기까지 엄격하게 가르쳤다고 한다. 세상에서는, 어려움 없는 풍족한 삶 속에서도 돈에 대한 욕심보다는 타인에 대한 배려와 베풂을 강조한 게이츠가(家)의 가풍이 오늘날의 그를 만들었다고 말한다. 그러나, 최고로 돈 벌고, 최고로 베푸는 것도 어려서부터 늘 일등이어야만 했던데서 생겨난 타인에 대한 우월감이 자신도 모르게 뼛속까지 몸에 밴 탓은 아닐까. 진정한 예의와 겸손은 그런 우월감을 내려놓고 상대를 배려할때 자연스레 우러나오는 것인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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