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우리의 옛 전통사회에서는 ‘씨받이’와 ‘씨내리’라는 괴이쩍은 습속이 있었다. 남존여비,
칠거지악이 당시 향촌사회를 지배하는 엄연한 법도로 자리잡고 있었던 시절의 얘기다.
소위 뼈대 있는, 지체 높은 사대부가에서 가문(家門)의 혈통, 즉 대(代)를 이어가는 문제는 죽고 사는 것 그 이상이었다. 의당 딸보다 아들을 귀하게 여기고, 아들을 낳지 못하는 것을 아녀자의 일곱가지 악행(惡行)의 하나로 꼽아 내쫓을 수 있는 일이 합법적으로 행해진 것도 다 그 때문이다.
그래서 여인네는 시집가는 순간부터 아들을 출산해야 하는 것이 일생일대, 절체절명의 숙명적 과제였다. 그 일이 순리대로 되지 않을 때, 대리모를 통해 ‘씨앗’을 받는 ‘씨받이’와 남의 ‘씨앗’을 받아 수태케 하는 ‘씨내리’ 습속이 집안 어른들의 묵인과 강요아래 행해졌다. 남편과 몸을 섞은 대리모를 바라보아야만 하는 불임의 안방마님이나 외간남자를 받아들여 씨를 받아야 하는 여인네에게는 참으로 잔혹한 수난의 세월이 아닐 수 없었다.
특히 ‘씨내리’의 경우는 남편이 생물학적으로 생산불능일 경우에 마을을 드나드는 건장한 방물장수나 머슴에게 은밀히 연통을 놓아 금전적 대가를 지불하고 며느리 방에 들여 씨를 받는 것이다. 그 씨가 꼭 아들이라는 절대 보장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이 얼마나 가당찮은 야만적 교합(交合)인가.
그 적의 ‘씨내리’는 아니지만, 최근 시급(時給) 2만원에 ‘3040 골드미스’들에게 ‘임시고용 남편’을 알선해 주는 업체가 성업중이라서 화제다. 이 ‘시급 남편’은 30~40대 미스들을 중심으로 온라인을 통해 빠른 속도로 확산되고 있다. 업무상 필요한 부부동반 모임에 갈 때 진짜 남편처럼 역할을 대행해 준다. 부동산 계약 같은 무거운 일을 할 때, 같이 밥 먹을 사람이 필요할 때, 같이 부부같은 기분으로 휴일을 보내고 싶을 때, 동창 모임 혹은 이야기 상대가 필요할 때 별 부담없이 ‘시급남편’을 찾는다는 게 업체 관계자의 얘기다. 가사도우미가 아니라 굳이 ‘시급 남편’을 고용하는 이유는 정서적 만족감 때문이라는 것.
이처럼 남편까지 렌털(rental)하는 세상에 무슨 일이든 못할까 싶다. 정서… 운운 하지만 그 의식의 밑바닥에는 천박스럽기 그지 없는 물신(物神)이 도사리고 있는 듯 싶어 서글퍼지기까지 한다. 또 돈이면 무슨 일이든 한다…식으로 ‘시급 남편’ 알바를 구하는 총각들도 한심스럽기 짝이 없다. 돈이 좋아 몸은 팔 수 있다지만 혼마저 팔아서야 쓰겠는가. 세상이 어수선 하니 별일도 참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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