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주여, 저를 당신의 도구로 써 주소서/ 미움이 있는 곳에 사랑을/ 다툼이 있는 곳에 용서를/ 분열이 있는 곳에 일치를/ 의혹이 있는 곳에 믿음을/ 그릇됨이 있는 곳에 진리를/ 절망이 있는 곳에 기쁨을 가져오는 자 되게 하소서/ 위로받기 보다는 위로하고/ 이해받기 보다는 이해하며/ 사랑받기 보다는 사랑하게 하여 주소서/ 저희는 줌으로써 받고/ 용서함으로써 용서 받으며/ 자기를 버리고 죽음으로써/ 영생을 얻기 때문입니다.’
이 기도문은 온 인류에 회자되고 있는 이탈리아의 수호성인이자 ‘신의 음유시인’이라 불리는 아시시 성 프란치스코(1182~ 1226)의 ‘평화를 구하는 기도’ 전문이다. 중부 이탈리아 아시시의 부유한 집에서 태어난 프란치스코는 20세 때 집을 떠나 “나는 가난한 부인과 결혼했다”면서 평생 가난과 청빈, 겸손과 이웃사랑을 헌신적으로 실천했던 성인이다.
노동과 묵상으로 하느님을 섬기는 작은 형제 공동체라는 수도회를 이끈 이 수도자의 일생은 고난만큼이나 숱한 기적과 같은 일화로 점철돼 있다. 수도사가 된 뒤에는 자신의 인간적인 성적(性的) 욕망 때문에 자신의 음욕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면서 장미 가시덤불 위에서 맨몸으로 굴렀다고 한다. 그리고 그가 죽은 뒤에 그가 굴렀던 가시덤불에서 피어난 장미들에게는 가시가 없었다고 전해진다.
그는 또 만년인 1224년에 자신의 몸에 초자연적인 현상인 다섯개의 성흔(聖痕;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에 못 박혔을 때 옆구리와 양손, 양발에 생긴 다섯개의 상처)을 받은 것으로도 유명하다. 그러나 성흔을 받은 이후에는 건강이 급속도로 안좋아져 눈이 반쯤 멀고 병마에 시달렸다. 결국 그는 1226년 10월3일 토요일 해질 무렵 동료 수도자들에게 요한복음서의 수난기를 읽어달라고 청하고 나서 시편 141편을 기도한 후에 “어느 누구도 죽음의 포옹에서 달아날 수 없습니다”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19일 즉위한 새 교황이 성 프란치스코를 닮고자 이름을 프란치스코로 하고 낮게 낮게 행하는 그의 일거수 일투족이 연일 화제가 되고 있다. 스스로를 ‘교황’이 아닌 ‘로마주교’라 부르는 겸손, 방탄 리무진차를 마다하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며, 번듯한 공관을 마다하고 작은 아파트에 들어가 혼자 밥 짓고 바느질 하던 소탈함… 자신을 교황으로 선출한 추기경들과의 저녁자리에서의 건배사가 커다란 울림으로 다가온다. “하느님께서 (나를 뽑은) 당신들을 용서해 주시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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