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우리 마당에는 며칠 전에 겨우 복수초가 피었고 수선화는 땅에서 잎이 이제 겨우 5센티 정도 올라왔으니 언제 필지 모르겠습니다. 그래도 언 땅을 뚫고 올라온 푸르고 연한 잎이 반갑기만 합니다. 그런 하찮은 것들이 저에게 부활을 믿는 기쁨을 일깨워주니 크나큰 축복이지요.’
이 글은 이태 전 타계한 소설가 고 박완서 선생이 2005년 3월25일 부활절을 앞두고 이해인 수녀에게 보낸 편지글의 일부다. 생전에 구리의 아치울이라는 마을에서 계절마다 산색(山色)을 달리하는 아차산 한 자락을 거실 가득 들여놓고 살았던 선생의 집 작은 뜨락에는 야트막한 담장을 따라 키 작은 풀꽃이며 야생화가 철에 따라 소끔소끔 피어났다. 담장 밖 세상 저 먼 곳에서는 아지랭이 몸짓처럼 유채꽃이며 산수유, 홍매화 꽃망울 터지는 소리가 남촌바람에 실려와도 선생댁 안마당의 복수초, 수선화는 서두르지 않고 그렇게 샛노랗고 흰 꽃을 피워 올렸다.
알뿌리로 된 구근초본 다년생인 수선화(水仙花)는 우리 토종이 아니라 ‘이스라엘 난’으로 알려져 있는데, 겨우내 얼어붙어있던 땅을 헤치고 마늘싹과 같은 줄기를 한치정도 뻗어올려 12월~3월에 노랗고 흰 술잔 모양의 꽃을 피운다. 수선화는 꽃의 고혹스러움 때문인가, 고대부터 숱한 신화와 전설, 시와 노래의 소재가 되어 왔다.
‘나에게는 좋은 집도 없어요, 한 조각 땅도 없고요/ 내 손에는 구겨질 돈 한푼 없지요/ 그러나 나는 당신께 굽이치는 언덕을 깨우는 아침을 보여줄게요/ 그리고 입맞춤과 일곱송이 수선화를 드릴게요./ …/ 오, 햇살에 빛나는 일곱송이 금빛 수선화가/ 하루가 가고 저녁이 지날 때까지 우리의 길을 밝혀줄 거예요.…’
성가(聖歌)로 불리는 이 ‘일곱송이 수선화(Seven Daffodils)’는 가수 양희은이 같은 제목의 노래로 번안해 불러 국내에 널리 알려지기도 했다.
그러나 뭐니뭐니 해도 2~3월이야 잔설 속에서 뚝뚝 흐르듯 붉게 피어나는 동백꽃 아니겠는가. ‘무어라 강물은 다시 풀리어/ 이 햇빛 이 물결을 내게 주는가’ 주절이던 미당 서정주 시인은 이런 꽃맞이 시를 남겼다.
‘선운사 고랑으로/ 선운사 동백꽃을 보러 갔더니/ 동백꽃은 아직 일러 피지 않았고/ 막걸리집 여자의 육자배기 가락에/ 작년 것만 오히려 남았습디다./ 그것도 목이 쉬어 남았습디다.’-<선운사 동구>
낼 모레가 춘분(春分)이고 시절은 청명(淸明)으로 흘러가는데 꽃은 일러 아직 피지 않았는가, 마음만 시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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