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인터뷰 - 유동준 나혜석 기념사업회 회장

여성대통령 시대 맞아 진취적 여성 선각자를 부각시킨 보람 커

고향 수원의 역사 인물
알릴 계기로 시작,
알아갈수록 나혜석의
당당함에 반해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대통령 취임을 앞두고 있는 요즘이다. 이런 세상을 활짝 열기까지에는 여성에 대한 사회적 편견과 사회의 부조리에 저항했던 여성선각자들의 노력이 깔려있다. 그중에는 적극적으로 행동하는 여성의 대명사였지만 당시의 사회통념상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던 정월 나혜석 선생도 있다.
유동준 나혜석 기념사업회 회장은 나혜석 바로 알리기에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나혜석에 씌어졌던 굴레를 벗기는데 쉼 없이 노력해 온 인물이다.
“여성대통령시대는 나혜석 선생 같은 진취적 여성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입니다. 여성대통령 시대를 맞아 큰 보람을 느낍니다.”
하지만 유 회장의 나혜석 바로 알리기는 아직도 진행형이다.
정월 나혜석선생은 우리나라 최초의 여성 화가이자 문인이다. 일제강점기 독립운동도 했지만 당시의 사회 통념상 이혼녀란 사회의 따가운 시선 속에 질곡 많은 삶을 살다가 행려병자로 일생을 마쳤다. 하지만 유동준 회장의 부단한 집념과 노력 끝에 2000년 국가가 지정하는 문화인물로 선정되었고 ‘정월 나혜석’을 기념하는 거리가 그녀의 출생지 수원시에 조성되는 계기를 만들었다.
이렇듯 여류화가 나혜석이 재조명을 받기 시작 한 것은 불과 13년 남짓 된 일이다. 그동안 불륜을 저지른 신여성으로 더 알려졌었지만 유 회장의 줄기찬 노력에 의해 알려진 나혜석의 진정한 모습은 독립운동을 한 재능있는 예술가다.

▲ 수원시에서는 팔달구 인계동 효원공원부터 서쪽 600m 거리를 ‘나혜석거리’로 조성했고 거리에 우뚝 선 그녀의 동상은 수원 문화의 중심이 되고 있다.

문화인물 선정이 가장 기뻤던 일
유동준 회장이 유독 나혜석 바로 알리기에 나서게 된 것은 자신이 태어나 자란 지역을 바로 알고, 고향의 역사 인물을 알려야겠다는 사명감 때문이었다.
사실 유동준 회장은 서울농대를 졸업하고 50년 가까이 농업계에 몸담았던 존경받는 원로 농업인으로 더 알려져있다. 현재도 32개의 농업단체 전임회장들로 구성된 선진농업을 지향하는 선농회를 이끌며, 어려운 농업계에 조언과 힘을 보태고 있다.
“수원이 배출한 나혜석 선생에 대한 오해와 편견이 심해 재조명의 필요성을 절실히 느꼈습니다.”
유 회장은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나혜석 기념사업회를 만들어 나혜석 선생이 이 땅의 진정한 선각자이며 훌륭한 예술가이자 독립운동가임을 알리는 일에 앞장섰고 알면 알수록 나혜석의 불꽃같은 당당한 삶에 매료되어 “바르게 알려보자”는 사명감을 가지게 되었다고 말한다.
전국 방방곡곡을 누비며 나혜석 관련 자료를 모으고 학술대회, 전시회 등을 열었다.
“가장 수월하게 사회에서 인정받는 길은 정부가 지정하는 문화인물로 선정돼 국가의 공식적 인정을 받게 하는 방법이라 이 부분에 무척 공을 들였어요.”
나혜석의 탄생 100주년인 1996년에 이달의 인물로 선정되면 뜻 깊을 것 같아서 부랴부랴 기념사업회를 만들었지만 뜻을 이루지 못했고 시기가 좀 늦춰져 2000년 2월 ‘이달의 문화인물’로 나혜석 선생이 선정될 수 있었다. 1999년 4월에 ‘제1회 나혜석 바로알기 심포지엄’을 개최하며 언론에 주목을 끈 것이 주효했기 때문이다.
이 심포지엄은 지난해 제 15회 나혜석 바로알기 심포지엄으로까지 줄곧 개최되고 있기도 하다.
문화인물 선정을 계기로 수원시 팔달구 인계동에 나혜석 동상이 건립되고 나혜석 문화거리도 조성되었다.
유동준 회장의 집념과 열정의 결과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직 할 일이 많다
이혼녀라는 멍에로 역사인물로 대접받지 못했던 나혜석 선생을 수원의 역사인물로 우뚝 세웠다는 자부심이 유회장에게는 있다.
여기에 그치지 않고 수원 나혜석거리에 ‘나혜석 기념관’을 세우고, 생가터에 나혜석 선생 생가를 복원하는 계획도 유 회장은 세워놓고 있다.
“재능있는 한 여성을 죽음으로 이끈 것은 우리 사회의 보수적 제도와 인습, 그리고 편견이었죠. 선생의 업적에 대해 올바른 평가가 내려져야만 이 시대를 사는 여성들이 능력만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사회를 열 수 있다고 봅니다.”
일흔 여섯이란 나이가 무색할 만큼 유동준 회장의 힘찬 목소리는 아직 해야 할 일이 많이 있음을 알려주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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