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찬이슬이 맺힌다는 한로(寒露)절기가 한 이레 전이었고,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 한 이레 후인 10월23일인데 설악산의 단풍소식이 들린다. 폭염·태풍에 혼을 놓아 철 가는 줄 몰랐는데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단풍은 본래 단풍나무에서 유래했다. 단풍나무과에 속하는 노인단풍·당단풍·꽃단풍의 총칭인데 낙엽 활엽교목으로 잎은 활짝 편 손바닥 모양이고 5월에 꽃이 피고 가을에 붉은색의 단풍이 든다. 상록 침엽수를 뺀 거의 모든 나무들은 겨울이 다가오면 겨울나기 준비작업을 한다. 잎을 떨어뜨려 수분 증발을 최대한 막아 줄기가 마르지 않게 한다. 그러면 잎에서의 광합성으로 생성된 당분이 줄기로 전달되지 않고 잎에 쌓인다. 이 당분이 잎의 녹색색소를 분해시키면서 붉은 색소를 만들어 간다. 나뭇잎이 붉게 물드는 단풍의 생태적 원리다.
단풍 하면 우리 백두대간에서 으뜸으로 치는 것이 금강산 단풍이다. 그래서 가을금강을 따로 풍악산(楓岳山)이라 이르고 있지만 쉬 가볼 수 없으니 그저 귀 열어 담아볼 뿐이고, 예나 지금이나 단풍을 시(詩)의 소재로 삼은 시인들은 하늘의 별 만큼이나 많다.
‘여기저기서 단풍잎같은 슬픈가을이 뚝뚝 떨어진다. 단풍잎 떨어져 나온 자리마다 봄을 마련해 놓고 나뭇가지 위에 하늘이 펼쳐져 있다. 가만히 하늘을 들여다 보려면 눈썹에 파란 물감이 든다. 두 손으로 따뜻한 볼을 씻어보면 손바닥에도 파란 물감이 묻어난다. 다시 손바닥을 들여다 본다. 손금에는 맑은 강물이 흐르고, 맑은 강물이 흐르고, 강물 속에는 사랑처럼 슬픈 얼굴-아름다운 순이(順伊)의 얼굴이 어린다.’
윤동주의 ‘소년(少年)’이란 시다. 맑다 못해 처연하기까지 한 가을의 서정이 수채화처럼 그려져 있다. 김영랑 시인의 절창 ‘오-매 단풍들것네’는 환장할 것 같은 가을을 가슴에 붙잡아 앉힌다. ‘오-매 단풍들것네’/장ㅅ광에 골 붉은 감잎 날러오아/누이는 놀란듯이 치어다보며 ‘오-매 단풍들것네’
조지훈 시인은 ‘오동잎 잎새마다 달이 지는데~’하며 가을을 앓았고, 조태일 시인은 자신의 삶처럼 격정적인 단풍의 몸짓을 시로 옮겼다.- ‘단풍들은/일제히 손을 들어/제 몸처럼 뜨거운 노을을 가리키고 있네.//도대체 무슨 사연이냐고 묻는 나에게/단풍들은 대답하네/이런 것이 삶이라고./그냥 이렇게 화르르 사는 일이 삶이라고.’ 그런 단풍과 가을을 ‘금강’의 시인 신동엽은 이런 수사를 풀어놓고 저세상에 갔다.-‘이 빛나는 가을, 이 서러운 가을, 덜 여믄 사람은/익어가는 때/익은 사람은/서러워 하는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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