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1956년 이른 봄, 명동 한복판 동방살롱 맞은편 초라한 빈대떡집 깨어진 유리창 안에선 새로운 사랑의 노래가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상고머리의 박인환이 작사를 하고, 이진섭이 작곡을 하고, 임만섭이 노래를 부르고, 첫 발표회나 다름없는 모임이 열리게 되었다. 길 가던 사람들이 문 앞으로 모여들거나 말거나…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바람이 불고 비가 올 때도/나는 저 유리창 밖 가로등 그늘의 밤을 잊지 못하지/사랑은 가고 옛날은 남는 것/여름날의 호숫가 가을의 공원…’
‘명동백작’이란 별명으로 불린 시인 이봉구가 그의 저서 <명동(明洞)>에서 절친 시인 박인환의 시 ‘세월이 가면’이 처음 노래로 불리던 당시 술집 풍경을 그린 것이다. 누가 보거나 말거나, 누가 듣거나 말거나 아랑곳 하지 않고 취흥에 겨워 목청껏 노래하고 떠들고, 꺼이꺼이 울기도 하고… 그것이 당시 우리나라 문화예술계를 주름잡던 인사들의 모습이고 그들의 둥지였던 서울 명동의 모습이었다.
이른바 ‘명동스타일’이다. 그렇게 수도 서울의 심장부 명동은 가난한 문화예술인들의 해방구였다. 67년 전 8·15 해방과 더불어 물밀듯 쏟아져 들어온 서양문물은 이곳에 몸을 풀었고 이곳에서 어지럽게 향유(享有)되었다. 그래서 명동은 60~70년대 우리나라 먹을거리, 입을거리, 볼거리, 즐길거리 등 모든 문화트렌드와 패션과 첨단 유행의 메카였다. 적어도 인사동, 동숭동 마로니에 대학로, 신촌의 이대앞, 홍대앞이 젊은이들의 신문화 물결에 흠씬 젖어들기까지는.
‘갓 쓴 행인이 줄어가고 담벙거지 쓴 양복장이가 늘어가면서 신장개업한 카페와 바아 깃발이 날리던’(이서구의 ‘세시기’) 명동이 70년대 이후 허장성세(虛張聲勢)로 시름겨워 할 즈음에 개발 붐을 타고 ‘졸부(猝富)들의 신흥천국’으로 떠오른 것이 압구정동, 청담동으로 대표되는 강남이다. 요즘 그 ‘강남’이 전세계 유튜브를 점령하고 바람몰이를 하고 있다.
‘오빤 강남스타일/커피 식기도 전에 원샷 때리는 사나이/밤이 오면 심장이 터져버리는 사나이/때가 되면 완전 미쳐버리는 사나이/… 오오오오 오빤 강남스타일’
싸이(PSY)란 가수의 ‘강남스타일’ 뮤직비디오 가사 일부다. 단순한 노랫말과 엉거주춤한 아저씨 스타일인 가수의 코믹한 ‘막춤’같은 ‘말춤’, 펑키스타일의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경쾌한 반복… 다분히 ‘B급 성적 코드와 코믹정서’가 불쾌하지 않게 거부감 없이 듣보는 이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한다. 그러나 단지 시각적 자극과 청각적 자극에 기대어 열광하는 ‘감각적 카타르시스’가 찌든 우리사회의 병리(病理)현상을 역설적으로 보여주는 건 아닌지… 하는 의구심을 떨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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