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은처’는 만들어진 조어(造語)로 글자뜻 그대로 ‘숨겨놓은 부인’을 말한다. 우리의 옛 전통사회에서는 본처 외에 외간여자와의 외도(外道), 즉 오입질(誤入-)이 공공연하게 자행됐다.
남편이 아내를 공공연하게 집밖으로 내쫓을 수 있게 했던 악행 ‘칠거지악(七去之惡)’의 하나인 아들을 못낳는다는 이유만으로 손톱만큼의 죄의식도 없이 소실(小室)을 버젓이 집에 들어앉혔고, 첩질(妾-)로 가산을 탕진하는 이가 한둘이 아니었다. 남편이 백명의 첩을 두어도 말 말것을 부녀자가 지켜야 할 덕행의 근본으로 삼던 시절이었으니 참으로 기가 막힌 인고(忍苦)의 세월이 아닐 수 없었다.
신라 때의 <처용설화(處容說話)>는 당시 사회에서 음성적으로 행해지던 오입질의 반증으로 풀이된다.
‘서울의 달이 밝아 밤 늦도록 노닐다가/집에 와 방안 잠자리를 보니 다릿가랑이가 넷이로구나/둘은 내 것이거늘 둘은 누구 것인가. /이미 빼앗아 간 것을 어찌할고.’
이 얼마나 어이없는 일인가. 밤 늦도록 밖에서 놀다 신혼방에 들어와 보니 자기 각시 옆에 웬 외간남자가 누워있다니… 처용은 슬며시 돌아나와 비탄에 젖어 춤을 춘다. 악귀나 역신(疫神)을 쫓기 위해 행해지는 처용무(處容舞)는 이에서 비롯됐다.
외도에는 신분고하가 없었다. 특히 불교에 귀의해 비구(남승)와 비구니(여승)가 지켜야 할 일체의 계율인 구족계(具足戒)를 받은 스님들도 예외는 아니어서 여색(女色)을 탐하다 파계(破戒)의 구렁텅이에 빠지는 일이 수두룩 했다.
조선조 때 개성에서 대가 곧기로 유명했던 승려 지족선사는 화담 서경덕·박연폭포와 함께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린 황진이의 미색에 빠져 은밀히 하룻밤 통정(通情)한 후 파계했다. 신라 고승 원효대사는 당나라 유학길에서 홀연 깨달은 바 있어 되돌아와 미친 중처럼 저잣거리를 쓸고 다니며 외쳐댔다.
“누가 자루없는 도끼를 내게 주겠느냐. 내 하늘을 받칠 기둥을 깎으리로다.”
이 말을 들은 신라 태종왕이 귀한 자손을 얻을 수 있음을 직감하고 원효를 불러 자신의 딸인 요석공주와 합방을 성사시켜 아들 설총을 낳았다. 원효에겐 요석공주가 ‘숨겨놓은 부인’인 은처였던 셈이다.
요즘 스님들의 도박과 흡연, 성매수, 원로스님들의 ‘숨겨놓은 부인’-은처 폭로 얘기로 불교계가 벌집을 쑤셔놓은 것처럼 소란스럽다. 이해 당사자간의 비방전도 볼썽사납다. 한 이레 뒤면 부처님 오신 날인데 염불보다 잿밥에 눈 먼 수행자들을 보노라니, ‘자신의 눈속에 박힌 대들보는 보지 못하면서 남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주려 한다’는 경구가 생각난다. 정말 아미타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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