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촌지’라고 하면 누구나의 머리속에서 먼저 떠올리는 것이 ‘돈봉투’다. 그러나 이 단어의 순된 사전적 풀이는, ‘자그마한 뜻으로 자기 선물을 겸손히 이르는 말’로 ‘촌심(寸心)’과 같은 뜻으로도 쓰인다.
‘박지(薄志)’, ‘촌의(寸意)’도 같은 의미로 쓰이지만, 속되게는 ‘뇌물성 금품’을 이르기도 한다. 글머리에 ‘돈봉투’를 적시(摘示)한 것도 그런 변질된 세속적 통념을 얘기해 주기 위해서다. 애초 작은 정성으로 마련한 마음의 선물이라는 순수한 의미를 담고 있던 말이 엉뚱하게도 ‘대가성 뇌물’로 간주되기에 이른 것이다.
예전 전교생이라야 고작 700여명에 지나지 않았던 시골의 ‘국민학교’시절, 선생님은 아버지 이상으로 어려운 존재였다.
거의 담임선생님의 지명에 의해 반장이 되고, 매학년 성적 상위 5%인 학생에게 주어지는 영예로운 우등상을 많은 친구들의 부러움 속에 받아도, 무슨무슨 기념일이며 가을운동회, 원족(遠足, 소풍)가는 날이 되어도 아버지는 큰바위처럼 꿈쩍도 하지 않았다.
어린 생각에 돈봉투가 됐던 선물이 됐던 뭐라도 담임선생님께 성의표시를 했으면 좋겠는데 그런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다. 단지 소풍날 어머니께서 김밥 몇줄과 사과 두어덩이, 사이다 한 병을 따로 챙겨 “이거 점심때 선생님께 드려라”가 고작이었다. ‘어머니표’ 김밥이란 게 지금처럼 게맛살이며 계란, 시금치·당근·우엉·단무지 등등의 고명을 속에 박아 색색깔로 식감을 살린 것이 아니었다. 이른 새벽 무쇠솥에 지은 밥에 깨소금과 참기름을 넣고 소금간을 해서 고슬고슬하게 볶은 다음, 참기름으로 잰 뒤 무쇠솥 뚜껑위에 얹어 그 열기로 누기를 없앤 김으로 둘둘 말아낸 ‘통김밥’이어서 선생님 앞에 내놓을 때마다 괜히 손이 부끄러운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모양이 없어서 그렇지 그 고소한 맛은 가히 일품이었는데도 말이다.
그러다가 6학년 가을이 되자 아버지께서 “이거 담임선생님께 갖다드려라!”하고 추수한 쌀 한가마를 리어카에 실어놓으셨는데, 얼마나 신이 났던지 친구 하나를 불러 끌고 밀며 날듯이 달려 이웃마을에서 하숙하고 계시던 담임선생님께 전해드렸던 기억이 새롭다.
내일, 15일은 스승의 날이다. 가뜩이나 학교폭력으로 된 몸살을 앓고 있는 우리의 학교현실에서 이날 하루 마음만이라도 ‘돈봉투’가 아닌 ‘참스승’을 그려보는 은혜로운 날이 되었으면 좋겠다.

저작권자 © 농촌여성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