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맨발의 청춘>이라는 영화가 있었다. 1964년 개봉돼 신성일이란 무명의 신인배우를 일약 스타덤에 올려세우고, 뭇 여성들의 로망인 청춘스타로 만들었다.
아무것도 가진 것이 없는 백수건달(白手乾達)인 길거리 불량배 청년이 부유층 처녀와 이룰 수 없는 사랑에 빠져 끝내는 동반자살로 생을 마감한다는 줄거리로 구성돼 많은 젊은이들의 심금을 울렸다.
‘백수’는 글자 그대로 하얀 손, 즉 빈손을 말하는 것이고, 다른 한자어로는 ‘적수공권(赤手空拳)’, 즉 맨손 맨주먹과도 같은 말이라 할 수 있다. 불교에서는 사바세계의 중생이 왔다가 가는 이승에서의 행로를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라 하여 ‘공수래공수거(空手來空手去)’라고 하였다.
참으로 다사다난하기도 했던 지난 한 해 직장인의 삶을 대변하는 사자성어로 ‘수무푼전(手無푼錢)’이 뽑혔다. 한 취업포털사이트에서 직장인 776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한 결과 ‘손에 가진 돈이 한 푼도 없다’는 뜻의 ‘수무푼전’이 전체의 15.2%인 118명의 지지로 1위를 차지했다.
그 뒤를 이어 ‘고생 끝에 낙이 온다’는 ‘고진감래(苦盡甘來)’, ‘힘이 강한 사람들 사이에 끼어서 괴로움을 겪는다’는 뜻의 ‘간어제초(間於齊楚)’가 뽑혔다. 또한 ‘모든 일에 가망이 없어 체념한다’는 뜻을 가진 ‘만사휴의(萬事休矣)’를 꼽은 직장인들도 많았다.
그에 반해서 ‘명예와 실리를 모두 챙겼다’는 뜻의 ‘명리양전(名利兩全)’을 꼽은 응답자는 0.4%로 지극히 적었다. 곧 물가고와 경기불황으로 힘겹게 한해를 보냈음을 짐작케 하는 사자성어가 주류를 이루었음을 살필 수 있다.
이와는 달리 구직자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서는 ‘등에 가시를 짊어진 것처럼 마음이 조마조마하고 편하지 않다’는 ‘망자재배(芒刺在背)’, ‘큰일을 위해 때를 기다린다’는 ‘불비불명(不飛不鳴)’, ‘얻은 것 없이 헛수고만 했다’는 ‘노이무공(勞而無功)’이 차례로 구직자들의 심경을 드러내 주는 사자성어로 꼽혔다.
어렸을 적 선친께서는 “비울수록 채울 수 있는 공간이 많아지는 법”이라고 하셨다. 그것이야말로 무욕(無慾)의 ‘빈손의 미학’이 아닐까.
저 헬렌켈러는 “세상은 고통으로 가득하지만 한편 그것을 이겨내는 일로도 가득 차 있다”고 했다. 새해엔 그런 마음으로 한번만이라도 가슴 뜨거운 사람이 되어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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