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인간은 남녀노소,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누구나 죽지만 죽는 모습이 다 똑같진 않다. 미국 인구연구소 통계에 따르면, 태초부터 20세기까지 이 세상에 태어난 호모사피엔스(Homo sapiens, 인류)는 대략 1,060억명이고, 그중 1,000억명이 우리보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미국의 통계청은 이 지구상의 인간이 1초에 1.8명씩 죽는다고 했다.
판소리(박봉술 창본) <적벽가>에 보면, 오·촉 연합군의 ‘학살’과도 같은 맹공에 어이없이 낙엽지듯 죽어가는 위나라 병사들의 ‘유쾌한 죽음’(?)이 현장감 있게 그려져 있다.
‘가련할손 백만 대군은 날도 뛰고, 오도가도, 오무락 꼼짝달싹도 못하고, 숨 막히고 기막히고, 살도 맞고, 창에도 찔려, 앉아 죽고, 서서 죽고, 웃다 죽고, 울다 죽고, 밟혀 죽고, 맞아 죽고, 애타 죽고, 성내 죽고, 덜렁거리다 죽고, 복장 덜컥 살에 맞아 물에 풍! 빠져 죽고, 바사져 죽고, 찢어져 죽고, 가이없이 죽고, 어이없이 죽고, 무섭게 눈 빠져, 세 빠져, 등 터져, 오사, 급사, 악사, 몰사하야, 다리도 작신 부러져 죽고, 죽어보느라고 죽고, “이놈, 제기” 욕하며 죽고, 꿈꾸다가 죽고, 떡 큰 놈 입에다가 물고 죽고… 대해수중 깊은 물에 모두 국수 풀듯 더럭더럭 풀며 적벽풍파에 떠나갈 제 일등명장이 쓸 데가 없고, 날랜 장수도 무용이로구나.’
이 얼마나 황당하기 이를 데 없는 죽음들인가.
그런가 하면 이집트인들은 부활에 대비해, 잉카인은 조상을 추모하기 위해, 이탈리아의 팔레르모 상류층은 신분 지위 과시를 위해, 중세 유럽의 수도원과 교황청에서는 성인의 증표로 삼기 위해 시신을 방부처리 해 미라를 만들었다. 원정 도중 무더운 바빌론에서 장티푸스로 인한 오한·고열·복통으로 서른 넷의 시퍼런 나이에 죽은 알렉산더 대왕 시신은 진흙 꿀단지에 담가 방부처리된 채로 수도로 옮겨졌다.
중국의 진시황제 역시 천하 순찰 길에 나섰다가 도중에 급사 했다. 마침 날씨가 더워 시체가 부패해 악취가 나자 정권찬탈을 노린 역신 조고 일당이 쉬쉬 하며 시체를 실은 수레에 썩은 생선을 가득 쌓아 위장하고 수도 함양에 들었다.
지난 17일엔 이 지구상에 둘도 없는 얼어붙은 ‘동토(凍土) 왕국의 은둔자’ 북한의 김정일이 심근경색으로 졸지에 급사해 37년 철권통치의 권좌에서 허망하게 무너져 내렸다. 그리고 그의 아버지 김일성과 같이 방부처리돼 냉동미라가 되었다.
사랑하는 가족들의 이름 한번 제대로 따뜻하게 불러보지도 못하고 저승길을 떠났을 한 무모한 독재자의 헛된 꿈과 오만의 뒷모습을 오늘에 다시 보는 마음이 답답하기만 하다.
한 해가 가도 또다시 내일의 해는 떠오를 것이지만, 얼어붙은 북녘땅에 ‘평양의 봄’은 멀기만 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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