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동짓달이 되면 머릿속에 그림처럼 먼저 떠오르는 것이 황진이(黃眞伊)의 시조 한 수다.
‘동짓달 기나긴 밤을 한 허리를 베어내어/춘풍이불 아래 서리서리 넣었다가/어른님 오신 날 밤이여드란 구비구비 펴리라’
조선조 중종·명종 때 개성의 명기(名妓)로서 서화담·박연폭포와 더불어 ‘송도삼절(松都三絶)’로 불린 황진이의 이 대표시조를 두고 훗날의 시조시인인 가람 이병기는 “우리 시조시사에서 최고의 걸작이자 최고의 절창”이라고 절찬했다. 동짓달 긴긴 밤의 중간을 ‘한 허리’라 한 것이나, 그것을 모시 베듯 서걱 가슴속에 저며둔 마음의 칼로 베어내 봄바람 같은 풋풋한 향내음 일렁이는 춘풍이불 속에 ‘서리서리’ 저며두는 마음이라니. ‘~이여드란’이란 조사 표현은 또 어떤가. 그토록 그리고 그리던 님을 맞는 여인의 말 할 수 없는 기쁨에 찬 치맛자락을 드러내 보이는 의미의 조사이니, 서리서리, 구비구비와 함께 주는 어감의 맛이 가히 절창이 아닐 수 없다.
밀양의 여인네도 <밀양아리랑>에서 ‘날 좀 보소/날 좀 보소/날 좀 보소/동지 섣달 꽃 본듯이 날 좀 보소’하고 한 서린 님 향한 그리움을 노래했다. 꽁꽁 얼어붙은 동지 섣달에 피어난 꽃이니 그 아니 귀하고 아름답지 아니 하겠는가.
절기상 동지는 일년 중 밤이 제일 긴 날이고, 양력상으로는 그 해에 들어있는 마지막 절기이자 전체 24절기상으로는 소한·대한 바로 전인 22번째 절기이다. 우리 옛 선인들은 ‘작은 설’로 쳐 설빔을 차려 입고, 이때의 시식(時食)으로 팥죽을 쑤어 조상께 올리고 오는 새해의 복을 빌었다.
이때 팥죽 속에는 찹쌀가루로 새알모양의 떡인 ‘새알심’을 가족전체의 새해 나이수 만큼 빚어 넣었다. 지방의 한 문화계 원로인사는 “동짓날 며칠 지난 후 동치미와 함께 얼음과자 같은 희끗희끗한 새알심을 죽에서 뽑아내 입안에서 굴리며 먹었던 언 팥죽의 맛을 잊을 수 없다”는 추억담을 들려준 적이 있다.
이 해의 동지는 12월22일 목요일에 들었다. 시인 박송죽(朴松竹)은 동짓날 아침풍경을 이렇게 그렸다.
‘동짓날 아침상에서/아이들은 좋아라 알심을 먹고/나는 부끄러운 고백같은/나이를 먹는다’
해마다 오고 가고, 맞고 보내는 절기의 뒷모습이지만, 올해는 유난히도 따뜻하고도 애틋한 사랑하나 품어안지 못하는 우리 모두의 ‘상처받은 영혼’ 같아 가슴이 서늘해 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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