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옛날에 한 젊은 선비가 유람차 관북지방(함경도)에 갔다가 청루(靑樓)의 기생과 사랑에 빠졌다. 그렇게 꿈결같은 시간이 흐르기를 두어달 남짓. 두 사람에게 어쩔 수 없는 이별의 시간이 왔다. 젊은 선비가 형편상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는 처지에 놓였던 것이다. 그러자 기생이 젊은 선비의 소매를 부여잡고 눈물을 찍어대며 애절한 목소리로 말했다.
“서방님께서 그동안 제게 갖가지 귀하디 귀한 물건들을 선물해 주셔서 얼마나 좋았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세상에 둘도 없는 진귀한 금은보화라 한들 서방님 몸의 터럭 한 올에 비하오리까? 하여 이렇게 떠나셔야만 하는 서방님께 간곡한 청이 하나 있습니다.”
그 말에 젊은 선비는 ‘까짓, 이 마당에 사랑하는 여인네의 청 하나 못들어주랴’싶어 고개를 끄덕였다.
“서방님의 이빨 하나 뽑아 주시면 생시에 서방님 뵈온 듯 이 가슴에 고이고이 간직 하오리다.”
헉, 숨이 차오르는 것을 애써 눌러가며 생이빨 하나를 뽑아 기생에게 건네주고 길을 떠났다. 허위허위 철령고개마루에 다다라 뒤돌아서 아득히 멀어져간 기생집을 바라보자니 연인에 대한 그리움으로 울컥 가슴이 메인다. 그렇게 넋나간 사람처럼 먹먹하게 서 있는데 웬 낯선 선비 하나가 꺼이꺼이 울며 걸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젊은 선비가 의아해 자초지종을 물으니, 주절주절 청루의 기생과 지냈던 얘기며 이별의 징표로 생이빨 뽑아주고 생이별 하고 나선 마당이니 그 기생이 사무치게 그리워 눈물이 난다는 둥 털어놓는 얘기를 듣고 있자 하니, 영락없이 자기와 정을 나눴던 그 기생과 같은 인물이 아닌가.
젊은 선비는 부아통이 치밀어 올라 머슴에게 그 기생집에 가서 자신의 이빨을 당장 찾아오라고 했다. 머슴이 한달음에 청루의 기생을 찾아가 자기 주인의 이빨을 달라고 했다. 그러자 그 기생은 잠시 뒤 웬 큼지막한 자루 하나를 들고 나와 머슴 앞에 던지며 말했다.
“이 많은 이빨 가운데서 너의 주인 이빨이 어느 것인지 난 모르겠으니 네가 찾아서 갖다 주거라!”
이 촌담(寸談)에 기대어 ‘발치여산(拔齒如山)’, 즉 ‘뽑은 이빨이 산과 같다’는 성어(成語)도 나왔다.
언젠가 ‘그랜저검사’가 나라 안을 시끄럽게 하더니, 이젠 ‘벤츠여검사’ 스캔들이 장안을 달구고 있다. 그렇고 그런 요즘 사회 지도층 인사들의 사련(邪戀)에 눈먼 그런 작태보다야 정표로 생이빨 뽑아주던 저 때 사람들의 배꼽잡게 하는 모습이 오히려 정감이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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