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아주 어렸을 적 기억이지만 할머니 손은 만병통치의 약손(藥~)이었다. 그렇게 쥐어뜯듯 아프던 배도 “할머니 손은 약손~”하면서 할머니께서 배를 손으로 문질러 주기만 하면 흡사 마법의 주문에 걸린 것처럼 사르르 가라 앉으며 잠속으로 빠져들었다. 아주 심한 토사곽란이 나서 사관(四關) 침 놓는 윗동네의 글방할아버지를 허겁지겁 모셔오거나, 오리 밖 타동(他洞)에 사는 백의사란 돌팔이 양의사의 자전거 왕진을 청해 오는 것 말고는 어지간한 병증은 할머니와 어머니의 ‘약손’과 민방(民方) 요법으로 신통방통하게도 치료가 됐다.
특별히 한방(漢方)이나 약초에 대한 공부를 한 것도 아닌데 갖가지 증세에 따른 처방과 치료에 대한 철썩같은 믿음을 갖고 있었던 걸 보면 예전부터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오는 민간요법의 실증적 체험이 생활의 한 지혜로 몸에 배어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다.
그래서 집 안팎이 그렇고 그런 풀들과 화초로 가꿔졌다. 집 담장 모퉁이 응달엔 더부룩이 쑥대같은 익모초(益母草)를 심고 그 곁에 저절로 피어난 두어 그루의 까마중 나무에도 정성을 쏟았다. 한 여름 더위 먹었을 때 달여주시던 그 쓰디 쓴 익모초 탕약 맛이라니…. 원래 산모의 지혈·강장·이뇨·진통에 효험이 있어 어미(母)를 이롭게(益)한다 하여 이름도 익모초다.
하얀 별 모양의 꽃이 지면서 맺히는 까만 진주알 모양의 까마중은 이뇨제로 쓰였는데, 입안에서 톡톡 터질 때마다 아릿하고도 달착지근한 맛을 주었던 코흘리개들의 맞춤 간식거리였다. 손주새끼가 급체했다 싶으면 담장 밑에 시금치 모양으로 무리지어 돋아난 질경이 뿌리를 짓찧어 먹이고, 젖이나 우유 먹고 체한 젖먹이 아이에게는 볏짚을 삶은 물을 먹였다.
그뿐이랴. 뒤란 장독대 옆 화단에는 채송화·봉숭아·맨드라미·원추리·칸나들 사이에 지금도 재배가 금지돼 있는 하얀꽃 양귀비 몇 그루를 심어 달걀모양의 열매를 따 베주머니에 말려놓고는 필요할 때마다 약탕기에 달여 진통제로 썼다. 동네 사방이 논 뿐인데도 오징어뼈를 구해 상비해 놓고 칼이나 낫에 손·발을 베일 때마다 가루를 내어 지혈제로 썼던 할머니·어머니셨다. 가정상비약으로 집집마다 소화제 활명수며 이명래고약, 두통약 뇌신과 신신파스, 아카징키(옥도정기) 등의 양약이 애용된 건 한참 뒤의 일이지만, 여전히 할머니의 비방은 그런 세상의 변화와는 아랑곳 없이 어머니대로 이어져 내렸다.
지금 우리 국회에서는 해열진통제·소화제·감기약 같은 가정상비약의 ‘수퍼판매’를 허용하는 내용을 담은 ‘약사법 개정안’ 의결을 여·야 선량들이 일제히 반대하고 나섰대서 말이 많다. ‘안전’을 이유로 들고 있다지만 제 밥그릇 챙기기에 골몰하는 것만 같아 보기 딱하다. 그러거나 말거나 구순을 바라보는 내 어머니의 약손은 지금도 손주들에겐 약효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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