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세계 최장의 독재자인 리비아 국가원수 무아마르 카다피(69)를 42년 철권통치의 권좌에서 추방시킨 나토연합군과 반군의 작전명은 ‘인어의 새벽(mermaid dawn)’이었다. 흡사 신비로운 동화의 제목을 연상시키는 이 암호(暗號)의 그 어디에서도 전쟁과 피의 이미지는 전혀 찾아볼 수 없다.
올해 초부터 튀니지에서 시작된 중동의 민주화 열풍인 ‘재스민(Jasmine) 혁명’은 급기야는 ‘중동의 미친 개’로 불리던 카다피까지 독재의 아성에서 축출시키기에 이르렀다. 물푸레나무과에 속하는 재스민의 노란꽃과 향기는 또 얼마나 아름답고 향기로워 뭇 사내들을 뇌살시키며 여인의 가슴팍에 코를 박게 만드는가.
“내 미래는 너무 밝아서 가리개가 필요하기 때문에” 루이비통 선글라스를 즐겨 쓴다는 궤변을 늘어놓기도 하고, 사막 유목민인 베두인의 텐트에서 기거하며 40명의 미녀경호원을 거느리고 갖가지 기행을 일삼던 희대의 독재자, 스물일곱 청년 장교로 쿠데타에 성공한 직후 주변의 장성진급 권유도 마다 하고 “리비아군은 오직 국민의 지휘만을 받는다”며 대령 계급으로 일관하며 ‘혁명의 선구자 겸 지도자’라는 호칭만을 고집하던 카다피도 결국은 재스민 향기에 젖은 인어의 새벽 습격을 받아 영원히 역사의 무대에서 사라지게 됐다.
체코의 당서기장 두브체크에 의해 촉발되었던 동유럽의 민주화는 체코 수도의 이름을 따 ‘프라하의 봄’으로 명명됐다. 우리나라에서는 박정희 정권의 18년 유신독재 아성이 무너지며 광주민주화항쟁으로 이어졌던 ‘서울의 봄’이 피어나기도 했다.
1941년 일본이 미국의 하와이섬에 있던 진주만을 기습해 태평양전쟁을 일으켰을 당시 일본 함대 폭격기 출격암호는 ‘도라 도라 도라(Dora)’ 였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도라’는 여성의 이름인 ‘시어도라(Thedora)’ ‘도로시(Dorothy)’의 애칭이다.
여성의 애칭이 무자비한 전쟁에 쓰인 예는 또 있다. 1945년 8월6일 일본의 히로시마에 최초의 원자폭탄을 투하한 미국의 B-29 폭격기 애칭은 ‘에놀라 게이(Enola Gay)’였다. 이륙 직전까지 조종사에게조차 원폭투하 작전이 철저하게 비밀에 부쳐졌던 탓인지 미군 조종사들은 공룡같은 폭격기 옆구리에 요염한 포즈의 여자그림을 그려놓고 ‘에놀라 게이’라고 적은 다음 웃어가며 기념사진을 찍기까지 했다.
아무려나 민주화를 향한 재스민 향기가 중동에서 아프리카로 날리고 있는데, 우리의 반쪽 북녘땅에 ‘평양의 봄’은 아직 멀기만 한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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