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하늘은 끝에서 끝까지 열려서 불을 비처럼 쏟는 듯했다. 나의 온 몸은 긴장해서 손이 권총 위에서 경련했다. 방아쇠가 밀려갔고 나는 권총자루의 미끈한 배를 만졌다. 그리하여 짤막하고도 요란스러운 소리와 함께 모든 것이 시작되었다. 나는 땀과 태양을 떨쳐 버렸다.… 그때 나는 그 움직이지 않는 몸뚱이에 다시 네 번 쏘았다. 그것은 마치 내가 불행의 문을 두드린 네 개의 짧은 소리인 듯했다.’
이 장면은 알베르 카뮈의 대표작<이방인(異邦人)>에서 주인공 뫼르소가 바닷가 모래사장에서 아랍인을 권총으로 살해하는 순간을 묘사한 것이다. 살해의 동기는 참으로 어이없게도 눈을 뜰 수 없을 정도로 뜨겁게 작렬하는 태양 때문이었다. 카뮈는 이 소설을 통해 삶의 희망이 전혀 없는 인간의 한계적 절망적 상황인 ‘부조리(不條理)’를 극명하게 드러내 보여주고 있다.
살인은 설사 전쟁역학에서의 최대공약수인 병력(兵力)이라는 예외적 특수성을 감안한다 치더라도 어떤 이유로든 정당화 되거나 합리화 될 수 없다. 그래서 요즘 우리사회에서 빈번하게 일어나는 소위 ‘묻지마 살인’이 던져주는 충격은 더할 수 없이 크다. 단란한 옥탑방 서민가족의 행복한 웃음소리가 눈꼴 시어 죽였다든지, 그저 자신을 떠나간 옛 여자의 뒷모습과 닮았대서, 혹은 자신만 불행한 것 같아서 마구잡이로 흉기를 휘둘러대는 살인행각이 저 <이방인>의 주인공 뫼르소의 살인과 무엇이 다를 바 있겠는가.
지난 1985년 개봉된 영국의 롤랑 조페 감독의 영화 <킬링 필드, Killing Fields>는 나치의 유태인 대학살 이후 캄보디아에서의 최악의 학살을 리얼하게 그려 전 세계를 경악케 했다. 베트남전 직후인 1975~79년, 공산주의 성향을 가진 폴 포트의 급진 마오(모택동)주의 정권 ‘크메르루즈(붉은 크메르)’는 노동자와 농민을 위한 지상낙원을 건설하겠다며 전 정권이나 외국과 관련 있거나 지식인·전문직·기술자 등을 무려 170~ 250만명이나 맹목적으로 학살했다. 당시 캄보디아 전체인구(약 8백만명)의 4분의 1이 희생됐다. 크메르루즈는 특히 지식인, 안경 쓴 사람, 글을 읽을 줄 아는 사람, 심지어는 손이 하얀 사람 등을 무작정 잡아다 고문하고 무참하게 학살했다.
그때 당시의 크메르루즈 핵심 세력이었던 키우삼판 전 국가주석 등 전범(戰犯) 4명에 대한 재판이 지난 27일 캄보디아의 수도 프놈펜에서 시작돼 전세계인의 이목이 집중돼 있다. 대학살 후 30여 년이 지났지만 공소시효와 관계없이 핵심 전범들을 재판정에 끌어낸 캄보디아 정부의 용단이 놀랍고 부럽기도 하다. 독일 나치전범을 단죄한 뉘른베르크 재판 이후 가장 주목을 받고 있는 이 ‘세기적 재판’이 어떻게 끝날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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