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문둥이 시인’으로 불리며 문둥병(나병)이라는 천형(天刑)을 짊어진 채로 그 육신의 고통을 시(詩)로써 토해냈던 한하운(韓何雲, 1919~1975)은 자신의 처절한 모습을 첫 작품 <전라도길-소록도 가는 길에>에서 이렇게 그렸다.
‘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뿐이더라//낯선 친구 만나면/우리들 문둥이끼리 반갑다.//천안 삼거리를 지나도/쑤세미 같은 해는 서산에 남는데.//가도 가도 붉은 황톳길/숨막히는 더위 속으로 쩔름거리며/가는 길….//신을 벗으면/버드나무 밑에서 지까다비를 벗으면/발가락이 또 한 개 없다.//앞으로 남은 두 개의 발가락이 잘릴 때까지/가도 가도 천리 먼 전라도(全羅道) 길.’
그는 열 네 살 무렵에 문둥병이 발병해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며 ‘나를 아무도 없는 이 하늘 밖에 내세워 놓고, 죄명은 문둥이… 이건 참 어처구니 없는 벌이 올시다.’(그의 시 <벌,罰> 중에서)라며 절규했다.
1945년 해방을 전후해 어수선한 이 나라 안에서는 당시로서는 ‘불치의 몹쓸 병’이라는 그 ‘문둥병’, 즉 나병(한센병)이 도처에서 창궐해 온 나라 안이 대문 빗장을 닫아걸고 공포에 떨었다. 노고지리 우짖는 보리밭에서는 문둥이가 숨었다가 어린아이를 잡아다 간을 빼어먹는다는 무지한 괴담이 산골마을마다 흘러다녔다.
‘하늘이 내린 벌’ 곧 천형을 이를 양이면 인류 최초의 조상인 아담과 이브가 신명(神命)을 어기고 뱀의 유혹으로 선악과를 따먹어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원죄(原罪)를 들지 않을 수 없다. 그 죗값으로 남자에게는 노동의 고통, 여자에게는 출산의 고통이 주어졌다. 신의 불을 훔쳐다 인류에게 준 까닭으로 제우스신의 노여움을 사 카프카스산의 바위에 묶여 끊임없이 독수리에게 간을 쪼아먹히는 벌을 받은 프로메테우스(Prometheus), 산 정상에서 굴러내려 오는 바윗돌을 평생 밀어올려야 하는 벌을 받은 시지푸스도 천형의 본보기다.
인류 역사상 최대의 재앙 중 하나로 꼽을 수 있는 것은 14~17세기에 걸쳐 유럽 전역과 아시아를 휩쓴 ‘흑사병’ 즉 페스트(Pest)다. 이 가공할 역병으로 유럽에서 2억여명, 중국과 몽골지역을 중심으로 한 아시아에서는 무려 2천500만명이 죽어나갔다. ‘후천성면역결핍증’이라는 에이즈(AIDS)는 아직도 치료약이 없는 공포의 천형이다. 최근엔 독일산 친환경유기농 새싹에서 발견된 원인을 알 수 없는 장출혈성 대장균-슈퍼박테리아의 출현으로 온 지구촌이 들끓고 있다. 그런저런 세상사와는 아랑곳 없이 한하운이 피울음 울던 6월의 청보리밭에선 종달이만이 하늘 높이 덧없는 희망을 쏘아올리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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