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처음엔 너무도 신기하고 괴이쩍어 ‘도깨비불’로 불렸던 전기가 우리나라에 처음 도입된 것은 1887년 3월 경복궁의 건청궁이었다. 이 당시에는 발전기를 돌려 백열전구를 밝혔던 것인데, 고종임금 이하 조정의 대신들은 요란한 굉음을 내며 덜덜거리고 돌아가는 기계가 전깃불을 만들어낸다는 사실에 놀라 입을 다물지 못했다.
서울의 종로통에 가로등이 설치된건 그보다 13년 뒤인 1900년 4월이다. 이에 앞서 1899년(고종36) 5월17일 음력 4월초파일에는 서대문~청량리간 전차궤도가 완공되면서 서울에 전차가 처음 등장하게 되었다. 이 전차는 미국인 콜브란과 보스톡이 1898년 1월 조선정부와 합작으로 한성전기회사를 설립하고, 그해 말 전차·전기·전화 사업권을 얻어 전차궤도를 개설한 후 이날 개통식을 가진 것이다. 이때의 전차는 지붕이 없어 혹 비가 오면 승객들이 우산을 받고 타야만 하는 웃지 못할 진풍경을 연출하기도 했다. 그렇더라도 고작 30만명도 채 안되던 그때 서울인구의 3분의1 가까이가 하루동안 이 전차를 이용했으니 그 인기를 가히 짐작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최초로 전화가 개설된 것도 고종때인 1897년 경운궁(덕수궁)에서였다. 멀리 떨어져 있는 사람의 목소리를 수화기를 통해 들을 수 있었으니 그 아니 놀랐겠는가. 물론 이때는 교환원이 일일이 상대방을 연결시켜야 통화가 가능했던 다이얼이 없는 멍텅구리 수동식 유선전화기였는데, 그뒤 얼마 안가서 손가락으로 번호를 돌리는 다이얼전화기로 바뀌었다. 이 다이얼전화기는 자가소유 개념의 백색전화와 임대용 청색전화로 나뉘어 보급됐는데, 전화번호 값이 무려 2~3백만원씩이나 해 재산목록 3위 안에 들기도 했다.
그후 전화는 전자터치식까지 유선으로 활용되다가 진화를 거듭해 무선 핸드폰과 카폰, 그리고 오늘날의 스마트폰에까지 이르게 되었다. 공상과학 만화에서의 얘기가 그대로 현실이 되어 있는 것이다.
이제는 인터넷이 인간의 일상을 온통 지배하는 세상이다. 너무 많은 인터넷 정보의 과잉은 2000년대에 들어 거의 ‘폭력적 수준’으로 발전했다. 미국의 미래학자 아널드 브라운은, 앞으로 다가올 21세기의 가장 큰 위협이 “인터넷 등 신기술에 대한 과잉 의존”이며, “그 때문에 젊은 천재들이 사라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유전자 기술과 인공지능 분야도 ‘빛의 속도’로 발전하고 있다. 인간의 도움없이 스스로 학습하며 지식을 계속 확대해 나가는 인공지능 컴퓨터(NELL-Never-Ending Language Learner)도 탄생했다. 인간이 만든 인공지능컴퓨터가 인간에게 반기를 든다는 내용에 우리 모두가 열광했던 공상과학영화 ‘터미네이터’는 이제 더 이상 영화가 아닌 현실이 되어 있다. 과연 우리가 얻은 건 무엇이고, 잃은 건 또 무엇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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