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희 기자의 ‘세상만사’

 

조선조 말기에 영의정을 지내고 저동대신으로 불린 이유원(李裕元; 1814~88)에게는 외아들인 이수영이 있었는데, 악성 종기로 인하여 결혼한지 얼마되지 않아 죽고 그 자손이 없어 같은 문중의 판서 이주영의 둘째아들을 양자로 삼았다.
죽은 이수영의 부인은 모 판서의 딸이었는데, 일찍이 남편을 여의고 10대 과부가 된 처지여서 비슷한 또래의 새 양아들에 대한 자비로운 사랑이 특히 깊었다. 양아들 또한 양어머니에 대한 효성이 극진하여 홀로된 양어머니의 외로움을 위로하기 위하여 잠자리 시중을 들곤 했는데, 그 양어머니의 양아들에 대한 자애로움이 연애로 변할 때에도 효를 다한다는 뜻에서 양어머니가 하자는대로 순순히 응해 주었다. 결국 모성애와 효도가 연애가 되어버린 꼴이었다. 이 비련의 두 주인공은 자기네들의 불륜을 자진해서 이유원 대감에게 알리고,“죄를 주시려거든 함께 죄 주시고 너그러이 보아 주시려면 상민으로 만들어 멀리 낯선 시골에서 농사나 짓고 살게 해주십시오”하고 진정어린 애정고백을 했다.
하-기가 차 말을 잊은 이유원은 은밀히 상소를 올려 자신의 과부며느리와 양아들을 자신의 가문에서 끊어내 버렸다.
그런가 하면, 지금은 다 없어졌지만 서울 한강의 양화도와 밤섬 사이에 있었던 조그만 섬 잉화도에는 별천지같은 풍속이 있었다. <명조실록>(11년4월조)의 기록을 보자.
‘이 섬에서는 친척끼리도 서로 당사자들끼리 맘만 맞으면 시집장가를 간다. 비록 사촌 오촌의 근친이라도 아랑곳 없다. 홀아비나 과부가 생기면 따로이 혼처를 구할 필요도 없이 동거하는 것을 조금도 수치로 생각하지 않는다.…’
실로 천민이 누릴 수 있었던 자유방임의 극치였다. 조선의 서민사회에는 비천한 과부들이 추렴을 하여 건장한 사내를 사서 계주집의 벽장 속에 넣어 두고 차례로 성관계를 가졌던 백상계(白孀契)와 청상계(靑孀契)란게 있었다. 상류층에서는 귀한집 과부들이 하수인을 시켜 시골서 과거보러 상경한 촌뜨기 서생(書生)을 자루에 넣어 납치해다가 밤새 욕정을 나누어 풀었던 서생약탈이라는 습속도 있었다. 그렇게 성적인 해방을 자행했다.
얼마전 인터넷에 올라 세상을 놀라게 했던 가정을 둔 35세 기간제 여교사와 15세 남학생제자의 지하주차장 성관계 사건은 어떻게 풀이될 수 있을까. 그 여선생은 혹 저 <인형의 집>의 노라를 꿈꾼 건 아닐까. 그래서 당사자 자신들은 사랑이요, 남이 보면 불륜이라는 이치에 맞지도 않는 말이 생겨나지 않았는가. 그래도 끝내 사랑이고 한다면… 그렇더라도 최소한의 윤리와 도덕은 지켜져야 하는 것이 건강한 사회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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